[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 기자] 사설 구난차(레커)가 보험사를 사칭한 것도 모자라 한국도로공사 이름까지 팔고 다니는 건 경찰과 도로공사,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손을 놓고 수수방관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생기면 레커가 다 출동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사칭 레커에 대해선 사기죄를 적용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레커 업체의 유착, 운전자에 대한 횡포 등을 막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도로공사와 보험사 등을 사칭한 사설 레커가 활개를 치면서 피해를 입는 운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 표시를 부착한 걸 보고선 믿고 차량 견인을 맡겼는데, 과도한 견인 비용이나 '뻥튀기' 수리비 청구서를 받는 겁니다. 사칭이 벌어지는 건 사고 차량 견인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레커들의 경쟁이 과열된 탓입니다. 하지만 당국은 이런 행태를 '단순 생계형'으로 간주하면서 강하게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자체나 경찰 태도는 레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온적입니다. 충남 천안시청 관계자는 "레커 단속은 (기사와 업체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 생계에 지장이 큰 영업정지보다는 가급적 과징금을 매기는 쪽"이라고 했습니다. 천안시청에 따르면, 영업정지는 6개월 이내의 기간으로 정하고, 영업정지에 준하는 과징금은 2000만원 이하입니다. 충남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지만 사고 다발구간에서는 레커 기사가 법규를 어겨서라도 견인을 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단속을 해도 재발이 잦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 홍보 이미지. (사진=한국도로공사)
도로공사도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일단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를 통해 호출한 레커들은 차량에 도로공사나 EX 표시를 붙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해 운전자가 경황이 없거나 혹시라도 부상을 당한 운전자 입장에선 도로공사를 통해 출동한 레커인지, 사설 레커인지, 사칭 레커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겁니다.
먼저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는 도로공사가 사설 레커 업체와 협약을 맺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를 호출하면, 운전자의 휴대폰으로 레커가 출동한다는 알림이 전송됩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사설 레커에 '도로공사'나 'EX'라는 마크가 있는 종이·스티커 등을 지급한 적이 없다"면서 "도로공사나 EX 표시를 달고 영업하는 레커가 있다면, 사칭에 해당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당황에 빠진 운전자가 도로공사 레커와 사칭 레커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사칭 레커를 조심하라는 경각심을 갖도록 홍보가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만약 사칭 레커가 작정하고 속이려고 하면 도로공사가 일일이 관리하기는 힘들다"고 했습니다. 또 "고속도로에서 영업행위 중인 레커 업체의 불법행위 등에 대해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긴급견인서비스 협약업체가 도로공사, EX 표시를 붙이는 사례가 있다면 협약서에 따라 사안의 경중을 고려한 뒤 협약해지, 정지, 경고 등의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설 레커에 대한 조치가 미흡한 이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복수의 보험사 관계자들은 "전직 도로공사 직원이 특정 사설 레커 업체에 취업하기도 한 걸로 안다"면서 "보험사 근무하다가 레커 업체로 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레커 업체에 일하다가 보험사의 현장 출동 업무로 가는 사례도 있다"고 했습니다.
2016년 12월29일 논산천안고속도로에서 화물차와 부딪힌 트레일러가 훼손돼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장택영 교통안전환경연구소장은 "(사칭 레커) 상황일 때는 사기죄 등으로 처벌을 해야 한다"며서도 "레커 기사와 업체가 완전 생계형이고 하니까 당국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인식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사고 다발지역 현장에 레커가 출동해 서로 견인하려고 하면, 경쟁을 위해 사칭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객이 확실하게 '지금 보험사를 불렀고 지금 차량이 오고 있으니까 제 차량 견인하지 마세요'라든지 말을 해야 할 같다"고 했습니다. DB손해보험 관계자도 "예전엔 레커가 보험사를 사칭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최근엔 거의 없어진 걸로 안다"고 했습니다. 현대해상은 "레커가 보험사를 사칭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고 (묵인하는 건) 말도 안된다.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있잖느냐"고 했습니다.
사고 처리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사칭 레커를 방치하는 원인입니다. 장 소장은 "레커들이 과도하게 몰리고 보험사에 경찰까지 다 충돌해서 행정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며 "권역을 나눠서 한 권역에는 특정 레커들만 출동하게 하든가, 유럽처럼 사고 현장에 처리 전문가 한 사람만 출동해서 교통규범 위반 등 체크리스트 17개를 체크하고 이를 보험사와 경찰에 넘겨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허영욱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도로공사를 사칭하는 건 공무원 사칭죄에 해당할 것"이라며 "사칭을 통해 금전을 주고받는 일이 만약에 벌어지면 기본적으로 사기의 범주에 들어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안창현·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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