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 기자] 한국도로공사를 사칭한 사설 구난차(레커)가 등장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도로공사'라는 이름과 로고를 부착하고,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레커인 것처럼 사고 현장에 도착해 운전자들을 속이는 겁니다. 보험사 이름을 판 레커 사례는 있었지만, 도로공사인 것처럼 속이는 건 신종 수법입니다. 사고 운전자들은 도로공사라는 말만 믿었다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과도한 견인 비용을 청구받거나, 레커 업체와 연계된 공업사에서 공식 서비스센터보다 2~4배에 달하는 '뻥튀기' 수리비 청구서를 받는 겁니다.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사설 레커들이 도로공사를 사칭해 사고 운전자들을 속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사설 레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보니 공공기관을 사칭해 운전자를 꾀어내려는 겁니다. 사설 레커는 출동 때 과속이나 신호위반, 심지어 역주행을 해 교통흐름을 방해합니다. 불법으로 튜닝을 하거나 요란한 사이렌을 울려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고 운전자들은 사설 레커보다는 본인이 가입된 보험사의 구난차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사설 레커들이 보험사를 사칭했던 건 이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고 운전자들이 도로공사의 긴급견인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자 사설 레커들은 도로공사까지 사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레커는 차량 앞 유리창에 '도로공사' 또는 도로공사의 영문명(Korea Expressway Corporation) 약자인 'EX' 표시를 붙이고 다닙니다. 도로공사 사칭 레커는 특히 충남 천안시 목천IC~천안호두휴게소, 옥산IC~목천IC, 남천안 IC 쪽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이곳은 경부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 당진청주고속도로가 모이는 천안 분기점 부근입니다. 교통량이 많아 사고가 빈번한 곳입니다.
하지만 정작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를 통해 호출한 레커들은 도로공사나 EX 표시를 붙이지 않습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긴급견인서비스는 도로공사가 사설 레커 업체와 협약을 맺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를 호출하면, 운전자의 휴대폰으로 레커가 출동한다는 알림이 전송됩니다. 그래서 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 레커는 굳이 차량에 도로공사, EX 표시를 붙일 필요가 없는 겁니다.
9월7일 오후 충남 천안시에서 촬영된 사설 구난차(레커) 모습. 앞 유리창 상단에 한국교통공사의 약자인 'EX' 표시가 보인다. (사진=뉴스토마토)
한 보험사에서 '현장 출동 매니저'로 일했던 A씨에 따르면, 사칭 레커들은 운전자가 사고로 경황이 없는 틈을 노립니다. 우선 사고가 일어나면 사설 레커 1대가 현장에 출동합니다. 이때 사고 운전자가 "저는 사설 레커 말고 제 보험사 견인서비스 이용하겠다"라고 말하면, 레커는 "제가 보험사에서 나왔습니다"라고 속입니다.
다른 방법은 사전에 말을 맞춘 2대의 레커가 동시에 현장으로 출동하는 겁니다. 먼저 도착한 첫 번째 레커가 보험사를 사칭했는데 사고 운전자가 안 속으면, 두 번째 레커가 "도로공사에서 나왔다"라고 한다는 겁니다.
보험사에서 일하는 B씨는 "사고로 경황이 없는 운전자가 사칭 레커의 말에 속으면, 레커 기사는 자기들과 유착됐거나 레커 업체가 별도로 차린 공업사, 렌터카 회사로 운전자와 사고 차량을 데리고 간다"면서 "이런 곳에선 차량 수리비와 렌터카 요금이 적정 수준보다 2~4배 정도로 뻥튀기(과다 청구)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레커의 견인·운임 요금을 표준화하기 위해 2020년 10월부터 '구난형 특수자동차 운임·요금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구난차가 일반적인 승용자(2.5톤 미만)를 10㎞ 이하로 견인했을 경우 요금은 22만원이 안 됩니다. 세부적으로 견인비 7만2200원, 갈고리 형태의 견인장비인 윈치 6만5300원, 밀차 형태의 돌리 7만7000원 등입니다. 사고 차량 하체작업비와 안전조치비 등은 1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설 레커는 국토부 요금표를 무시합니다. 사고 운전자가 사설 레커 사용을 거부했다가 마지 못해서 이용할 경우, 레커 기사는 2~3㎞ 견인해놓고 사고 운전자에게 30만~50만원을 청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사고 운전자가 처음부터 사칭에 속아 사설 레커를 이용한다면, 레커 기사는 견인비를 따로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커 업체와 유착된 공업사로 데려간 뒤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합니다. B씨에 따르면, 공식 서비스센터에선 150만원 정도였던 수리비가 레커 기사가 안내한 공업사에선 300만~500만원이 나온 걸 봤다고 합니다.
(이미지=국토교통부 '구난형 특수자동차 운임·요금표')
A씨는 "운전자 입장에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경황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사칭에 속게 된다"며 "설사 보험사 견인서비스를 기다리려고 해도, 사고 차량으로 인해 교통흐름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눈치가 보이고, 경찰이 와서 차량을 빨리 옮기라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고 했습니다.
이어 "심지어 공식 서비스센터 이름을 내걸고 사설 레커와 유착한 곳도 있다"며 "운전자가 나중에 사칭을 당한 걸 알더라도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선 쌍방이 비용을 조정하라는 식으로 안내할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창현·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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