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송강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기 잘하는 배우, 믿고 보는 배우. 감독들이 선호하는 배우 또는 관록의 배우 등.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모든 걸 설명하고 또 그려나가야 할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 확실하다. 송강호는 이제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건 확실해 보인다. 보통 연기 잘하는 배우들에게 ‘연기가 아닌 실제’ 모습이 보인단 찬사를 전한다. 하지만 송강호에겐 그걸 좀 더 넘어선 무엇을 잣대로 들이대야 할 시기다. 송강호도 사실 매 작품 속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기하고 또 그려나간다. 그 배역을 위해 연구하고 또 고민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가 가져온 결과물은 송강호 외에는 달리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설명 불가능함을 내놓는다. 그는 연기를 하지만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리고 급기야 송강호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스스로를 지워버린다. 이건 이런 말이다.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 있고, 관객의 눈에 비친 스크린 속 인물이 등장할 때 현실에 존재하는 송강호는 온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는 스크린 속 인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된다. 영화 ‘브로커’를 통해 한국 남자배우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타이틀이 오히려 ‘이제야 받게 됐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대중들의 평가가 이미 수상 이전부터 충분히 납득되는 걸 국내 관객들만 알고 있었단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배우 송강호. 사진=써브라임
송강호가 일본 출신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작업한 과정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이미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배우다. 그 이전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전 세계 영화학도들의 필수 관람 무비이기도 했다. 그 영화에서도 송강호는 얼굴이다. 그러니 송강호와 고레에다 감독의 만남이 신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작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분명해 보였다.
“첫 만남은 진짜 예전이에요. 2007년 ‘밀양’으로 칸 영화제 다녀오고 그해 가을 부산영화제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어요. 그때 서로 인사를 했었죠. 그 뒤로도 배우와 감독으로서 몇 차례 만나면서 영화 얘기를 주고 받았죠. 그때 주고 받은 얘기 속 제목이 ‘요람’이었어요. 몇 년 걸릴 듯하다. 근데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 뭐 이 정도였죠. 그리고 ‘기생충’ 찍을 때 본격적으로 얘기가 오갔어요. 같은 가족 영화라 ‘괜찮으시겠냐’라고 되물었죠. 뭐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우선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언급했다. 한국 남자배우 최초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점이다. 사실 송강호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당시에도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한 작품에 한 개 이상의 상을 수여하지 않는단 칸 국제영화제 내부 규정에 따라 남우주연상 수상이 불발됐었단 입소문은 지금도 기정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배우 송강호. 사진=써브라임
“(웃음)그건 뭐 잘 모르겠고요. 하하하. 칸에는 총 6번 갔었죠. 배우로 갈 때보다 작년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는 부담이 좀 되더라고요. 후보에 오른 영화를 다 봐야 하고 매일 회의를 해야 했어요. 우선 수상자로 호명되고 무대에 올라가선 소감을 짧게 끝내려 했습니다(웃음). 뭐 저 혼자 잘해서 받은 상도 아니고 모든 출연 배우와 모든 스태프가 전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에 제가 대표로 불려 올라가 받은 거라 확신합니다.”
이젠 대배우란 타이틀이 전혀 아깝지 않은 송강호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송강호는 국내에서 유독 여러 스타 감독들이 함께 하고 싶은 배우 0순위로 언제나 꼽혀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스타 거장 감독 ‘봉준호’ ‘박찬욱’ 두 연출자의 대표작에 모두 출연했던 배우는 송강호가 유일하다. 특히 두 감독의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참석해 상을 받은 기록도 현재까진 송강호가 유일하다. 그런 송강호의 눈에 이젠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감독 스타일이 들어온 것이다. 뭐가 다르고 뭐가 비슷할지 궁금했다.
“봉준호 감독과 고레에다 감독은 다르다기 보단 공통점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천재적인 재능이 있고 현장에서 배우에게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해줘요. 진짜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주세요. 굳이 따지자면 다른 점은 간장게장을 좋아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랄까(웃음). 고레에다 감독님이 간장게장을 진짜 좋아하세요. 하하하. 아마 연출 방식의 미세한 차이라면 고레에다 감독님이 배우들과의 공감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봉 감독님은 디테일을 준비한 뒤 현장에서 배우들과 그걸 촬영하면서 검증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배우 송강호. 사진=써브라임
송강호가 이번 ‘브로커’에서 맡은 배역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기 매매 브로커’ 상현이다. 대사나 기본적 설정으로 상현이 어떤 상황에서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짐작만 할 뿐 상현에 얽힌 내용을 관객들은 읽어내기 힘들다. 그건 ‘상현’을 연기하는 송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기 대가’ 송강호였다. 신경은 썼지만 그렇다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상현의 스토리가 짐작만 됐지 자세히 나오진 안잖아요. 후반부 쯤에 상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지만 그런 걸 세세하게 묘사는 건 ‘브로커’를 관람하시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제대로 주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라고 궁금증이 솟아나지만 그것보단 이해가 되는 인물로 남는 게 더 좋을 듯 했죠.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테이크를 많이 안 갔어요. 감독님 스타일이 그러신 거 같고, 요즘 한국에서도 여러 감독님들이 대부분 그러세요.”
이미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그리고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하는 자리에 함께 했었던 송강호다.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뒤흔들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제 K콘텐츠는 대세를 넘어 온전하게 ‘주류’가 됐다. 이런 현상과 흐름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많이 느꼈을 송강호다. 자신의 남우주연상 수상과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수상까지. 같은 국가 출신 영화인이 세계 3대 영화제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동시에 수상을 한 것이다.
배우 송강호. 사진=써브라임
‘이번에 그런 걸 진짜 많이 느꼈어요. 어디를 가든 한국영화와 콘텐츠에 대해 궁금해 하더라고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에서 상 받은 뒤 기자회견 때 ‘이런 결과는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고 했었는데 이번 제가 받은 상도 나 하나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잖아요. 한국의 모든 영화인들 노력의 결과에요. 이젠 자긍심을 가져도 모자라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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