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름 석자만 떠올리면 ‘맞아 이 배우가 있었지’싶을 정도로 강렬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과거에는 충무로에서 가장 잘 팔리던 배우였다. 그의 외모에는 특별하게 섹시한 무엇이 있었고, 그래서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차별화가 분명했다. ‘섹시함’이라고 하지만 그게 그 배우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무엇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이 배우가 등장하면 극 전체의 공기 흐름이 뒤바뀌는 느낌 말이다. 그래서 이 감독도 당초 남자였던 이 배역을 한 관계자가 지나가는 말로 전한 이 배우의 이름 석자에 단 번에 극중 성별까지 교체하면서 캐스팅을 강행했다. ‘강행’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감독이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애당초 이 배우를 놓고 만들었을 텐데 뭔가 모르게 잠시 착각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 ‘마녀’ 시리즈 박훈정 감독 얘기다. 그리고 그 배우는 ‘조민수’다. ‘마녀’는 박 감독이 구상 중인 설명 불가능한 히어로 장르다. 현재 2편이 개봉했다. 사실 이 시리즈에 생명력이 깃들게 된 건 ‘조민수’란 배우의 공력이 절반 이상이다. 이 세계관을 창조한 박훈정 감독도 부인 못할 것이다.
배우 조민수. 사진=NEW
1편에선 히스테릭한 모습의 ‘닥터 백’을 연기했다. 그리고 1편 마지막에서 쌍둥이였단 설정이 등장한다. 2편에선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 ‘백 총괄’로 등장한다. 1편과 2편까지 이어지는 ‘마녀’ 세계관 속 ‘마녀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획자. 그 인물이 바로 ‘백 총괄’이다. 성이 ‘백씨’란 것 외에는 언니나 동생 모두 직함이나 직급 정도로만 불린다. 쌍둥이 언니가 동생 모두 ‘기괴한’ 인물인 것만은 사실이다.
“’기괴하다’라고 표현해 준 것에 너무 감사하고 소름 끼쳐요. ‘닥터 백’이나 ‘백 총괄’ 모두 실제로 그렇게 보였으면 했거든요. 진짜 이상한 사람처럼. 이미 알려진 바대로 ‘닥터 백’은 원래 남자였어요. 그런데 저를 캐스팅하면서 여자로 변화됐죠. 그리고 ‘백 총괄’ 없던 인물인데 1편 마지막 즈음에 박 감독이 연락이 와서 ‘추가 촬영 좀 하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부랴부랴 만든 게 ‘백 총괄’이에요. 당시에는 너무 급하게 만드느라 구체적 설정이 안됐는데 이번에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며 잡아갔죠.”
이 베테랑 여배우에게도 사실 ‘백 총괄’은 정말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1편의 ‘닥터 백’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다고. 우선 ‘백 총괄’은 1편의 ‘닥터 백’보단 이성적이고 침착한 모습이다. 그리고 상황을 주시하고, 그 상황 전체를 꿰뚫어 보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따로 있었다. 이런 감정적 연기야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연기 생활 동안 이런 설정은 정말 경험해 보지 못해서 너무 답답했다고.
배우 조민수. 사진=NEW
“(웃음) 다른 건 다 참겠더라고요. 근데 ‘백 총괄’이 계속 휠체어만 타고 다니잖아요. 그리고 별로 이동하는 게 없어요. 등장하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대사만 주고 받아요. 그게 너무 미치겠더라고요. 하하하. 1편에서 ‘닥터 백’은 정말 미쳐서 방방 뛰는 장면도 있고 이상하게 기분이 업 되고 또 종잡을 수 없는 그런 면이 있었잖아요. ‘백 총괄’은 눈 빛으로만 그걸 대신해야 하니 나도 답답해 죽을 뻔 했어요. 오죽하면 박훈정 감독에게 ‘나 좀 일어나면 안돼?’라고 부탁했을 정도에요.”
조민수는 ‘박훈정’이란 연출자를 알게 된 것을 인생의 최고 행운 중 하나라고 꼽을 정도다. 솔직히 자신의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은 정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녀’를 만나면서 허무맹랑하지만 그 안에서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는 배역을 연기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싶었다고. 지금도 박훈정 감독을 보면 그 상상력의 폭과 넓이에 놀라고 또 놀라게 된단다.
“1편 끝날 시점에서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백 총괄’을 만들어 내시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또 세계관을 확장시키더니 다른 얘기를 풀어내신 거죠. 글을 쓰시던 분이라 이런 상상력이 가능하구나 싶었죠. 정말 놀라웠어요. 지금도 그 넓이와 깊이는 가늠이 안될 정도에요. 마녀들의 엄마가 누굴까. 거기서 다시 시작을 하면서 그 세계를 넓게 펼쳐 놨는데 그걸 영상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결단은 박훈정이란 사람 외에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배우 조민수. 사진=NEW
사실 그는 이번 인터뷰가 쑥스럽고 낯뜨겁단다. 1편에 비해 2편에선 출연 분량이 현저히 적어졌다. 물론 전체 세계관을 놓고 본다면 ‘백 총괄’의 무게감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세계관에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단 것에 큰 위안을 가지면서 즐기고 또 즐기는 중이라고. 자신의 몫 정도는 충분히 해냈고 아직은 더 즐길 수 있고 그 즐김을 당분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
“’마녀’ 시리즈는 두 가지가 주목이 될 거 같아요. 여자가 이렇게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한국 장르 영화가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마녀’가 그걸 해냈잖아요. 그리고 세계관이 무한대로 확장 가능할 듯해요. 마블도 되는데 우린 뭐가 아쉬워서 안되겠어요. 창작 능력은 이미 우리가 더 앞섰고, 기술력도 이젠 충분하잖아요.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마녀’가 너무 그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백 총괄’의 세계관도 사실 너무 궁금해요. 박훈정 감독에게 스핀오프로 만들자고 조를까 봐요(웃음)”
‘마녀2’에서 ‘백 총괄’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1편과 2편,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를 생각하면 ‘백 총괄’은 사실상 이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시작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미 1편에서 등장한 ‘닥터 백’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 자체의 시작은 ‘백 총괄’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지는 조민수의 연기 스타일 그리고 그걸 보고 만들어 나갈 박훈정 감독에게 달렸다.
배우 조민수. 사진=NEW
“박 감독이 언뜻 ‘마녀’를 9편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지나가는 말로 하더라고요(웃음). 2편이 전체 스토리의 오프닝 성격이라면 한 템포 쉬어가면서 ‘백 총괄’은 어떤 인물이고 ‘닥터 백’은 어떤 인물일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웃음). 2편 오프닝에 등장한 대사인 ‘얘 자기가 누군지 진짜 모르나 보다’란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걸 파고 들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거죠. ‘마녀’ 세계관이 이렇다니까요. 하하하.”
창조와 변주가 무한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설정의 ‘마녀’ 세계관에 대해 조민수의 애정은 상당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세계관에서 당분간 조민수의 존재감이 이어질 듯하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설정된 ‘백 자매’ 자체가 조민수란 배우의 아우라를 빌려 만들었기 때문에 그를 빼고 논한다면 ‘마녀’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배우 조민수. 사진=NEW
“이런 시리즈 안에 배우가 존재한단 게 얼마나 행복해요. 진짜 지금 너무 행복해요.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사실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이 나이에도 이렇게 다이나믹한 얘기를 연기할 수 있단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이에요. 이렇게 젊고 힘 있는 후배 배우들과 어떤 문화 자체를 만들어 가는 작업에 함께 했단 것. 제 배우 생활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거에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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