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세상 모든 일은 변하는 것이니까,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일단은 마지막 공연과 앨범을 생각 중입니다.”
생의 마지막 비행을 앞둔 생텍쥐페리처럼 그가 말했다. 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 신한play스퀘어에서 열린 송골매의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배철수(70, 기타·보컬)는 “9월 국내 공연(9월 11~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과 내년 미국 공연, 마지막 앨범까지 내면 더 이상 음악은 안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송골매 2집부터 전성기의 중추였던 구창모(69, 보컬)는 이날 함께 동석해 “배철수씨가 줄곧 마지막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라스트 앨범, 라스트 공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며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바람도 내비쳤다.
‘한국 록의 전설’ 송골매가 40여년 만에 다시 비상한다. 잠정적으로 아름다운 마지막 비행을 준비 중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두 멤버, 그리고 이태윤(송골매 7~9집 베이스) 공연 총괄 음악 감독은 “음악이란 시대 변화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 오리지널과 100% 똑같은 연주와 편곡으로 팬들을 만날 것”이라며 “저희와 함께 호흡했던 이들뿐 아니라 전 세대가 그때 시절로 ‘타임슬립’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 신한play스퀘어에서 열린 송골매의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배철수(70, 기타·보컬)와 구창모(69, 보컬). 사진=뉴시스
송골매는 1979년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밴드 활주로 출신 배철수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후 1982년 홍익대 캠퍼스 밴드 블랙테트라 멤버 구창모와 김정선을 영입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구창모 영입 이후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구창모의 유려한 미성 고음을 앞세운 특유의 송골매 인장의 록 음악으로 ‘모두 다 사랑하리(2집, 1982)’, ‘처음 본 순간(3집, 1983)’ 등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1984년 구창모가 밴드를 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전향하면서, 송골매는 배철수를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하고 ‘하늘나라 우리님(5집, 1985)’ ‘새가 되어 날으리(7집, 1987)’, ‘고추잠자리(8집, 1988)’ 등을 발표했다. 1990년 히트곡 ‘모여라’가 담긴 정규 9집을 끝으로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2010년 원년 멤버인 이봉환·김정선을 주축으로 밴드를 재결성한 10집(‘송골매 2010’)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배철수, 구창모가 참여하지 않은 탓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배철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 DJ로 33년 간 활동했고, 구창모는 20년 간 해외 개인사업 활동 등을 이어왔다.
재결합은 2005년 무렵 배철수가 구창모에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문득 ‘구창모가 노래하지 않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10년 간의 논의 끝에 성사될 뻔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팬데믹 탓에 2년 간 미뤄졌다. 공연을 위해 운동을 하는 롤링스톤스 믹재거처럼 구창모는 요즘 25층 계단을 매일 오르내린다. 배철수는 “관객들의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고 싶다. 집에서 기타 연주와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 신한play스퀘어에서 열린 송골매의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배철수(70, 기타·보컬)와 구창모(69, 보컬). 사진=뉴시스
송골매는 1980년대 활동 당시 기성 가요계와 방송사의 경직된 문화를 타파한 록 밴드이기도 하다. 당시 가수들의 기본 복장 규정이던 턱시도와 나비넥타이 대신 어깨까지 장발을 치렁거리며 청바지를 입고 노래한 자유로운 청년문화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배철수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돌아보면 당시 청년들이 우리를 보고 일탈의 느낌을 받고 대리 만족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배철수가 구창모를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TBC 해변가요제 2차 예심 때다. 곡 ‘구름과 나를’을 부르는 구창모를 보면서 “’꽃미남인데다 저렇게나 깨끗하게 부르는 친구가 있구나’ 생각했다”고. 1집이 생각보다 히트를 치지 못하자, “송골매를 바꿔 봐야겠다”는 생각에 구창모가 있던 오색약수터 앞 암자로 향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5시간 울퉁불퉁 거리는 길을 갔어요. 그때 구창모씨 찾아간 게 돌아보면 신의 한수였죠.”(배철수) “숙명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꽃,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1982)’은 우리 각자가 만든 것을 합쳐 만든 곡이죠. ‘야, 이거 우리 송골매 할 수 밖에 없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구창모)
이번 공연에서는 송골매의 대표곡들을 비롯해 '외로운 들꽃' 같은 발라드도 연주하고 들려줄 계획이다. 배철수의 친동생 배철호 방송 PD가 총연출을 책임진다. 배철호 PD는 “송골매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되, 레트로 감성과 40년간 발전된 화려함까지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라 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베이스 연주만으로 리허설 현장을 뜨겁게 했다는 이번 공연의 음악 감독 이태윤은 “(구창모의) 보이스컬러가 기름지고 좋아졌고, (배철수의) 감정과 개성 역시 건재함을 느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 신한play스퀘어에서 열린 송골매의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뉴시스
40년 만의 공연을 기념해 후배들의 헌정 음원 프로젝트도 준비됐다. 엑소(EXO)의 수호가 ‘모두 다 사랑하리’를, 잔나비가 ‘세상만사’를 각각 리메이크해 선보인다. 이날 수호는 “저의 부모님들께서 팬이기 때문에,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가사들을 하나 하나 읊어보면서 시 같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잔나비는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는 원곡 구성에 메이저 화음을 더 쌓아 재밌게 풀어봤다. 록의 불모지에서 이런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해외 시장에서 K팝이 글로벌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 위주로 활성화돼 있고, 록 등 특정 장르의 부진이 여전히 아쉽다는 지적은 나온다. 이와 관련한 본보 기자의 질문에 배철수는 “저 역시 조금 더 장르가 다양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문화는 흘러가는 강 같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 내버려두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디어에서 (다른 장르의 음악도) 애정을 갖고 다뤄주면 좋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9월 서울에 이어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3월에는 미국 LA, 뉴욕, 애틀랜타 세 곳에서 공연을 연다. 광고에 쓰였던 음악 등 미발표곡들을 공연에서 연주하고 마지막 앨범에 담을 수 있다는 계획도 전했다. “사랑해주셨던 많은 팬분들에게 이 공연을 바치고 싶습니다. 기대만큼 기대 이상의 노력을 해서, 좋은 옛날의 추억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겠습니다.”(구창모)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참 어렵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겠습니다.”(배철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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