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갈등 장기화…불안한 조선업계
거통고지회 파업 44일, ‘철제감옥’ 농성 24일째
사측 손해액 6000억원…정부는 개입 머뭇
현대중공업 지부, 3사 공동교섭 준비 돌입
2022-07-15 17:42:49 2022-07-15 17:42:49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 호황에도 크게 웃지 못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 파업으로 노사 대치가 길어지면서 수천억원대 손해가 발생하는 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개입을 미루고 있다. 한쪽에선 수개월 갈등 끝에 전년도 교섭을 마친 조선사가 올해 임단협(임금·단체협약)을 앞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가족, 거제시민들이 지난 14일 회사 정문부터 옥포매립지 오션프라자까지 약 4.5 ㎞ 길이로 인간 띠를 만들고 파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15일 노동계에 따르면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부지회장이 대우조선해양(042660) 옥포조선소 선박에서 가로·세로·높이 1m(0.3평) 철제 감옥에 스스로 가둔 지 24일째를 맞았다. 거통고지회 파업은 44일째다. 지난달 22일 1도크 점거가 시작됐고 박두선 사장이 이달 6일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14일에는 하청 노동자 세 명이 산업은행의 결단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거통고지회는 15일 오후 거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핵심은 ‘불법’이 아니라 ‘조선업 인력난’과 ‘하청노동자 저임금’”이라며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과 하청업체는 23일 휴가 시작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사측은 세계 최대 규모인 1도크 진수가 막혀 이날까지 6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진수 지연으로 하루 매출이 약 260억원 줄고 고정비는 60여억원이 손실된다고 추산한다. 예정대로라면 6월 중순 선박 세 척에 대한 진수를 시작해 이달 안에 다음 진수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LD(인도 일정 미준수로 인한 지체보상금)를 감안하면 공정 지연에 따른 손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내 협력업체 협의회는 공권력 투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거통고지회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해 사내 협력사 5곳이 폐업했고 올해 6월 3개사, 이번달 4개사가 폐업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회사 임직원과 가족, 거제시민들은 14일 회사 정문부터 옥포매립지 오션프라자까지 약 4.5 ㎞ 길이로 인간 띠를 만들고 파업 중단을 요구했다.
 
정부는 ‘노사 공멸’이 우려된다면서도 적극적인 개입을 피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날 담화문을 내, 불법파업을 그만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대우조선 소유주인 산업은행과 그 주인인 정부가 피해를 키우는 주범이라고 맞섰다. 앞서 금속노조는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움직임이 없을 경우 20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야권은 금속노조에 힘을 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국회의원 64명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도급단가를 통해 사실상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원청기업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책임있게 문제 해결에 나서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이 야권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법적으로 안 되는 일을 자꾸 하라고 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7일 울산 본사에서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
 
지난 봄 파업으로 내홍을 겪은 현대중공업(329180)은 3사 단일 교섭에 대한 입장차와 연간 수주 목표 달성에 대한 상반된 시각 등이 임단협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는 19일 사측에 2022년도 임단협을 위해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267270), 현대일렉트릭(267260) 공동 요구안을 전달한다.
 
앞서 3사는 지난해 8월 2021년도 협상 시작 후 9개월만인 올해 5월27일에야 잠정안 가결로 임단협을 마쳤다. 잠정안 부결과 파업이 반복되는 동안 사측은 ‘업종과 사업 실적이 다른 회사의 동시 교섭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3사 공동교섭 구조인 현대중공업 지부는 세 회사 중 한 곳이라도 잠정안 가결이 안 되면 재교섭과 투표를 이어가야 한다. 이럴 때는 나머지 회사가 기다리거나 조합원 찬성으로 총파업에 돌입한다.
 
그간 노사가 보여준 수주호황에 대한 시각차도 크다. 노조는 최근 소식지를 통해 “회사는 곳간만 채울 것이 아니라 2022년 단체교섭에서 허리띠 졸라매고 있는 조합원이 가계 부담을 덜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사측은 적자를 이유로 방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현대중공업 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009540)은 지난해 1조3848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영업적자는 3964억원이다. 별도기준 현대중공업은 영업손실 2170억원으로 손해가 가장 컸다. 현재 철강사와 하반기 후판값 협상중인데 후판값이 오를 경우 또 다시 손실에 반영될 전망이다.
 
노조는 현대중공업그룹 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010620)·#현대삼호중공업)의 지주사 공동교섭 구조도 만들어갈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지부는 18일 서울 현대빌딩에서 지주사인 HD현대(267250)와 한국조선해양에 현중그룹 조선3사 공동교섭과 기본급 14만2300원 인상 등이 포함된 13가지 공동요구안을 전달한다.
 
다만 그룹 내 조선3사 공동교섭은 올해가 아닌 내년부터 추진할 예정이다. 노조 측은 “올해 준비한 기간이 짧고 회사에 공동교섭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는 작업들이 늦었다”며 “그룹사여도 법인이 다른데다 교섭 단위와 마무리 방법 등에 대한 합의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교섭 장기화와 노사 갈등 등 비효율성을 공동교섭 추진 근거로 내세운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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