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정우가 ‘이상해’졌다. 정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투리’다. 정우란 배우에겐 ‘사투리’는 하나의 캐릭터성을 대변해 왔다. 그가 출연해 신드롬을 일으켜 온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앞선 전제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다. 정우만큼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내 뱉는 배우가 국내에 또 있을까 싶다. 우선 부산 출신이라 정우의 사투리는 네이티브다. 그의 사투리 소화력은 ‘갑 오브 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거친 매력’이다. 무명 시절부터 그는 유독 거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해 왔다. 유머스럽고 일상적인 연기도 있어 왔지만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정우에게 거친 인물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정우도 그런 인물들을 정말 찰떡처럼 잘 소화해 왔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했던 영화 ‘뜨거운 피’를 보면 정우 외에 도대체 누가 저 배역을 저렇게 소화할까 싶을 정도다. 그런 정우가 ‘이상해’졌다. 이게 뭔가 부정적 의미는 전혀 아닌 걸 알 것이다. 정우는 어쩌면 앞선 두 개를 뺀 모든 게 진짜 전체를 대변하는 배우일지 모를 정도다.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에서 정우가 연기한 ‘박동하’를 보면 알 수 있다. 너무도 평범하다. 평범하다 못해 좀 불쌍하기까지 할 정도다. 무엇보다 ‘박동하’는 사투리를 안쓴다. 그래서 좀 ‘이상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그게 또 의외로 맛깔 난다.
배우 정우. 사진=넷플릭스
‘모범가족’은 10부작 드라마다. 국내 지상파 케이블이 아닌 OTT 플랫폼 넷플릭스로 공개가 됐다. 지금은 낯설지 않은 플랫폼이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앞선 대중적 플랫폼에 비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배우들은 소비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단 점에서 좀 더 수월해 보이는 듯하다. 정우도 ‘모범가족’ 공개와 함께 주변에서 쏟아지고 전해 오는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단다.
“되게 흥미로운 반응들이 즉각적으로 오니 좋더라고요. 요 근래 기억에 남는 관람평 중에 ‘재미있는 고구마’라고 말씀해 주신 분의 글이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고구마 같은 팍팍함은 있는데 그래도 달달한 맛이 좀 더 있는 호박고구마라고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박희순 선배나 윤진서 배우에 대한 얘기도 많고. 드라마 완성도에 대한 얘기도 많아서 우선 기분은 꽤 좋아요.”
정우가 맡은 ‘박동하’는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맞이한 마약 조직의 돈에 손을 댔다가 덜미가 잡혀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당하게 되는 얘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만 교수 임용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고 그럼에도 매번 탈락이 되는 신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남편으로서도 그리고 아버지로서도 가족들에게 외면을 받고 낙제점을 찍히게 된다.
배우 정우. 사진=넷플릭스
“우선 아버지잖아요. 그래서 동하가 되게 안타까웠어요. 자꾸 좋은 쪽으로 뭘 더 잘 해보려고 하는데 가족들은 그걸 몰라주고. 동하가 무능하다는 평도 많이 올라오던데, 전 동하가 절대 그렇다고 보지 않았거든요. 얼마나 열심히 살았어요(웃음). 근데 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게 힘들었던 거죠. 그러다 가족을 지키고 가족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범죄까지 저지르니 그게 너무 안타까웠죠.”
동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사실 좀 웃긴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정우는 ‘모범가족’ 촬영을 그리 어렵게 보지 않았다고. 배역을 소화하는 것과 작품을 소화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과정의 쉽고 어려움을 따지는 얘기였는데, 대본을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고. 때문에 인물에만 더 집중해서 소화를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닥치니 그게 아니었다고 웃었다.
“이게 뭐가 문제였냐면요(웃음). 우선 대본에는 그저 ‘파묻힌다’ ‘도망친다’ 이 정도의 지문만 쓰여 있었어요. ‘아 그런가 보다’ 했죠. 근데 제가 ‘모범가족’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돈가방을 들고 정말 전력질주를 하고, 그리고 땅에 파묻히기 전에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기도 하고. 그런 뒤에 그 장면들이 나와야 하는데 실제 촬영에선 그렇지가 않으니 앞뒤 연결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실제로 파묻히고 맞는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 몸을 혹사 시킬 정도로 달리기를 한 뒤에 찍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배우 정우. 사진=넷플릭스
이미 넷플릭스에 공개가 됐지만 ‘모범가족’에서 정우의 연기를 정말 압권 중에 압권이란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그의 떨리는 얼굴 근육 연기는 보는 이들의 소름까지 돋게 할 정도다.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의 감정을 순식간에 끌어 올리며 폭발시키는 장면은 ‘모범가족’의 시그니쳐로 소개가 될 정도다. 정우는 자신의 연기력이 아닌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저야 뭐 하는 일을 한 것 뿐인데, 이번에는 촬영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디테일하게 잘 잡아 주셔서 제가 좀 돋보이게 나온 것도 있죠. ‘동하’란 인물이 이런 상황에선 어떨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서서히 끓어 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처음에서 중간을 생략하고 갑자기 폭발하는 느낌으로 가려는 방식을 많이 썼어요. 그러면 시청자분들도 동하에게 좀 더 이입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정우도 당연히 아빠다. 아빠가 된 뒤 작품을 선택하고 캐릭터를 구축하고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분명 더 달라졌을 것이다. 정우 역시 동의했다. 그럼 ‘모범가족’ 속 동하는 정우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안타까웠다고 했다. 하지만 동하의 절박함은 ‘안타까움’만으론 설명하기 부족했다. 만약 정우라면, 그리고 정우가 실제로 동하의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싶다.
배우 정우. 사진=넷플릭스
“당연히 ‘이게 나라면’이란 전제가 들어가면 저절로 감정은 이입이 돼요. 하지만 가끔씩 대본의 감정이 이해가 안될 때도 있어요. 제가 시체를 숨겨 본 적도 없고, 그렇게 큰 돈을 훔쳐 본 적도 없는데 그 감정을 알 방법이 없잖아요. 상상으로 끌어와야 하는 데 그것도 한계는 있고. 결국 방법은 육체를 한계까지 밀고 나가면 희미하게 답이 보이는 듯해요. 우선 숨이 가빠지고 흥분이 되니 동하의 긴박함과 간절함이 어느 정도 이입은 되더라고요.”
정우는 인터뷰 말미에 ‘모범가족’을 촬영할 당시의 느낀 고충과 함께 지역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극중 ‘동하’의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집중하기 위해 감정을 끌어 올리고 유지하느라 촬영 현장에 구경 나온 주민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불편하고 죄송스럽다며 꼭 전하고 싶단다.
배우 정우. 사진=넷플릭스
“전체 촬영의 절반 가량을 거창에서 찍었는데, 동하의 극한 감정을 계속 유지해야 하니 정말 집중하고 주변을 잘 살필 겨를이 없었죠. 근데 드라마 촬영한다고 그렇게 많은 스태프가 오가고 그러니 또 지역 주민 분들은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어요. 현장에 많이들 오시고 그러셨는데 살갑게 인사도 잘 못 드린 것 같고 지금도 너무 신경 쓰여요. 나름 응원도 많이 받았거든요. 진짜 주민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린 단 말 꼭 전하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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