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범죄 장르 동력은 가해자가 만들어 내고 피해자가 받아내는 긴장감 수위다. 상호 보완적 방식의 긴장감 유발 프로세스를 통해 관객들은 이 얘기의 예측 불허와 방향성을 상상하며 기꺼이 끌려가는 것을 감당한다. 이런 과정이 기본적으로 ‘범죄 장르’를 소비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다. 이 모든 걸 전제로 출발하면 ‘리미트’는 뚜렷한 장점과 그 장점에 균등 되는 단점이 공존하는 기묘한 영화다. 장점을 바라보고 관람 하기엔 가성비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 장점만을 바라보며 관람을 하자면 단점이 너무 도드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양날의 검’이다. 무려 87분의 러닝 타임에 범죄 장르를 압축시켰으니 이 같은 현상은 분명 두드러질 가능성이 컸다. 몇 년 전부터 상업 영화 러닝타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부 장르 영화의 경우 2시간 벽은 물론 3시간까지 넘어섰다. 이에 반해 ‘리미트’는 90분 벽을 허물며 단 87분의 러닝 타임으로 범죄 장르 동력을 유지하는 ‘신기’(神技)를 일궈낸다. ‘리미트’는 장점과 단점이 자웅동체처럼 묶여 있는 영화다. 때문에 장점을 논하면서 단점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풀어낸다.
‘리미트’는 이른바 ‘타깃 스위치’ 방식을 취한다. 범죄 장르에서 피해자가 영화 중간 전환된다. 이런 과정은 앞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장점과 단점의 공존이다. 장르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론에서 가장 좋지 못한 지점이 이런 방식이다. 관객 몰입도를 순식간으로 무장 해제 시킨다. 의심되는 인물에게 집중하던 관객들의 긴장감 전환의 시간적 배려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 된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자면 ‘반전’ 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리미트’에선 중반쯤 ‘타깃 스위치’가 일어나면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더 가속화된다. 때문에 ‘리미트’가 앞서 언급한 장점과 단점이 함께 움직인단 전제에서도 장점을 먼저 언급할 수 밖에 없단 배경이 이렇게 때문이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87분 러닝타임 때문에 ‘리미트’는 구체적 상황 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한 채 달린다.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 해결 과정만 담겨 있다. 주요 등장 인물 중 소은(이정현)은 경찰이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경찰 월급으론 생활비 대기도 빠듯하다. 다단계를 부업으로 억척스럽게 아들을 키운다. 그런 소은이 근무하는 경찰서 관할에서 여아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유괴된 여아의 엄마 연주(진서연)는 쇼크로 쓰러졌다. 수사팀은 사건 해결을 위해 생활안전과 소속 소은을 수사팀에 합류시킨다. 소은은 탐탁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사팀에 합류한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유괴범과의 협상은 예상대로 잘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소은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의문의 전화 한 통. 연주의 딸을 유괴한 유괴범이다. 그리고 이 유괴범, 소은의 아들도 유괴 했단다. 도대체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일단 유괴범은 연주를 대신해 소은을 내세운 경찰의 수사 기밀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연주의 딸을 유괴한 대가로 몸값 3억을 요구하는 유괴범. 그 돈을 소은에게 대신 가져 오란다. 이를 위해 소은의 아들까지 유괴한 유괴범. 단 경찰의 추적을 피해 자신들이 정한 곳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미션이다. 미션을 성공해야 연주의 딸도, 소은의 아들도 무사할 수 있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유괴범은 잔인했다. 이 모든 걸 소은이 따를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아들을 유괴한 것도 모자라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끔찍한 방식을 더한다. 이제 소은은 아들도 구해야 하지만 유괴범도 잡아야 한다. 아니 유괴범을 잡아 죽여야 한다. 이건 경찰로 서가 아니다. 엄마로서의 다짐이다.
수 차례 언급했다. ‘리미트’ 정체성은 87분이란 러닝 타임에서 시작한다. 근래 몇 년 동안 국내 개봉 상업 영화 가운데 이 정도 러닝타임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이 일반화된 시장 상황에서 ‘리미트’의 짧은 러닝타임은 롤러코스터 수준의 빠른 전개를 의미한다. 범죄 장르에서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육하원칙을 극단적으로 축약 시킨 셈이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이 같은 축약의 영화적 설정의 세계관 속에서 ‘리미트’는 ‘유괴’란 사건을 끌어 온다. 그리고 유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것만으로도 ‘리미트’의 긴장감은 상당히 텐션이 강하다. 전반적으로 이 장르의 이 소재를 끌어왔다면 현재의 긴박함과 절박함을 위해 유괴 전 행복했던 시간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87분 러닝 타임은 그걸 담을 공간이 없다. 때문에 ‘리미트’는 무한질주에 방점을 찍는다. 범죄 장르 쾌감이 추적에 있다면 ‘리미트’의 쾌감은 ‘언리미트’ 수준이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이 정도 쾌감은 부정할 수 없는 이정현의 힘이다. 가장 약한 이정현에서 조금 강한 이정현 그리고 가장 강한 이정현까지. 강함의 스펙트럼이 몇 개의 경계로 나눠져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 폭을 이정현은 그린다. 이정현의 대척점에 선 문정희의 악랄함은 예상 밖으로 다른 지점을 볼 수 있게 한다. 빌런이지만 행동과 양식의 기본 전제는 ‘모성’이 기반이다. 배역의 전사와 설정 자체가 전례 없는 기괴함으로서의 정서도 만들어 낸다. 진서연은 ‘독전’의 강력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유약하고 불안한 모습을 묘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장점과 단점 공존 가운데 이 모든 게 장점이라면 단점은 너무도 간결하면서 예상 밖으로 너무 크다. 범죄 장르 속 빌런 개념의 ‘조형’이 문제다. 쉽게 말하면 빌런의 구체성과 목적성의 깊이감이 너무 얕다. 극중 문정희와 함께 또 다른 빌런으로 등장하는 준용(박명훈)과 명선(박경혜)의 캐릭터 당위성이 껍질만 존재하는 것처럼 너무 가볍다. 당위성이 떨어지니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빌런으로서의 기능성만 갖는 느낌이다. 두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해석력이라기 보단 전체 구성에서 차지하는 균형감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리미트’는 그 자체로 사회적 메시지가 상당히 강하다. 영화가 끝난 뒤 에필로그로서 스크린을 채운 텍스트와 이미지가 그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느낌이다.
영화 '리미트' 스틸. 사진=제이엔씨미디어그룹
결과적으로 ‘리미트’는 제목 그대로 여배우 3인방의 한계가 없는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장르물로서 충분하다. 하지만 이걸 증명하기 위해 러닝타임의 리미트를 걸어 버린 게 모든 것의 리미트로 작동돼 버렸다. 앞선 배우들의 한계 없는 스펙트럼 매력과 그걸 담은 모든 것의 리미트가 명확하게 공존하는 ‘리미트’다. 개봉은 오는 31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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