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뛰어나다 또는 파격적이다, 그것도 아니면 차별성 강조를 위해 ‘역대급’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강렬한 존재감을 수식할 때 쓰는 적절한 표현으로 ‘역대급’이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역대급’이 무색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역대급’ 안에는 그 이전까지의 비슷한 케이스를 압축한 시간 개념이 들어가 있다. ‘늑대사냥’은 그 이전은 물론이고 앞으로 이어질 미래에도 결단코 나올 수 없단 수위를 반드시 증명하려는 듯 작정하고 달려든다. 한 마디로 ‘미친 수위’를 쏟아낸다. 한국영화의 전무후무한 19금 하드코어 액션이 등장했다.
‘늑대사냥’은 이 영화 속 메인 소재인 죄수 호송작전 ‘코드명’이다.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한국인 적색 수배자들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 ‘프론티어 타이탄’이 이동식 교도소로 활용된다. 이송되는 적색 수배자들은 모두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범죄자들. 무려 14명 이상을 잔인하게 죽인 연쇄 살인마부터 친족 살인 여성 살인자에 각종 납치 강간을 일삼던 범죄자, 극악 무도한 마약 조직 관련 범죄자 등. 입에 담기 조차 끔찍한 범죄자들 뿐. 이들 수송을 담당한 한국의 형사들은 초긴장 상태. 프론티어 타이탄호가 공해상으로 빠져 나가게 되면 사실상 배 안은 무법지대나 다름 없게 된다. 이런 점을 노린 걸까. 배 안은 출항 전부터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들끓으며 일촉즉발 상황이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이 같은 긴장감 중심에는 온 몸이 문신으로 가득한 것도 모자라 눈빛 자체가 인간의 그것이 아닌 ‘박종두’(서인국)가 있다. 종두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어서 일말의 감정도 없다. 사이코패스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그에게 ‘살인’은 일종의 놀이면서도 소통의 방식이다. 배가 출항한 후 얼마 뒤 종두를 구하기 위해 위장 탑승한 그의 부하들이 발빠르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배를 장악하고 풀려난 종두는 본보기로 형사 몇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담고 있는 종두의 카리스마에 배 안 모든 범죄자들은 일순간에 감정적으로 굴복한 상태가 된다. 이제 프론티어 타이탄호는 종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종두의 진두지휘아래 프론티어 타이탄호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던 일부 형사들은 쫓고 쫓기는 살육의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제3국으로 도피 하려는 종두 일당 그리고 그걸 막으려는 형사들. 여기에 같은 범죄자이지만 종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서 결코 물러섬이 없는 도일(장동윤)까지. 묘한 긴장감과 그 분위기안에서 충돌하는 기괴함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무자비한 종두 일당이 점령한 프론티어 타이탄호는 온전히 시각적으로 피바다 그 자체. 완벽한 지옥이다. 하지만 그 지옥은 잠시 후 종두 일당조차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리는 반전을 드러낸다. 이제 프론티어 타이탄호는 종두 일당, 그리고 그들을 막아야 하는 형사들 여기에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일까지. 모두에게 생사를 결정짓는 지옥 그 이상이 된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늑대사냥’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은 ‘장르 영화 마스터’로 불린다. 김 감독 장기는 영화 메인 플롯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서브 플롯 활용 방식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남에 있다. 잔혹한 장기 밀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악보다 더한 악을 등장시키고 (공모자들), 물고 물리는 반전의 연속을 담은 케이퍼 장르 극대화를 위해 끌어 들인 막대한 분량의 돈다발이 전하는 시각적 충족감(기술자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극단적 공포를 기괴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플롯과 플롯의 조율력(변신)등이 이를 증명한다. ‘늑대사냥’에선 이 모든 요소들을 가용 범위 최대치 안에서 밀고 나간다. 잔인한 장면은 더 잔인하고, 고어적인 장면은 더욱 더 끔찍하게, 액션이 필요한 장면에선 더욱 더 스타일리시하게 밀어 붙인다. 비교 대상에서 ‘피칠갑 장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수위 높은 작품들이 흡사 ‘순한 맛’으로 느껴질 정도다. 고어 장르 홈타운으로 불리는 일본의 하드코어는 ‘늑대사냥’에게 몇 수는 가르침을 받아야 될 수준이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늑대사냥’은 시종일관 잔악 무도한 표현으로만 가득한 영화는 아니다. 중반부터는 순식간에 장르를 전환시킨다. 기존 하드코어 액션 장르에서 밀실 탈출 고어 스릴러로 기어를 변속한다. 스포일러를 고려해 언급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전환된 플롯 설정을 공개 한다면, 탈출을 위한 수단이 됐던 공간(배)이 다시 갇힌 공간으로 기능적 전환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설정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 이에 대한 힌트가 드러나지만 해당 장면으로 이후 시퀀스의 기능을 유추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같은 장르 반전 코드는 오롯이 김홍선 감독 상상력에 밑바탕을 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적 설정에 재미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흥미룹게 소화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지점에서 영화적 재미를 찾는 관객이라면 극단적으로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사냥’에서 관객 시선을 멱살 잡듯 틀어 쥐고 끌고 가는 것은 ‘죽이고 또 죽이고 마지막까지 죽이는’ 연속된 살육전의 강렬함이다. 단순하게는 대규모 전쟁 장면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를 제외하면 국내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캐릭터가 죽음을 당하는 영화로 기록될 듯하다. 죽이는 방법 역시 끔찍함을 넘어 극단적 엔터테이닝으로 기능 된다. 등장시킬 수 있는 모든 도구적 살육 그리고 그 이상을 넘어선 신체 훼손이 그려진다. 목적성이 있는 신체 훼손이 아닌 살육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진 표현이기에 의미적으로는 분명 다르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늑대사냥’은 하드코어와 고어 장르를 넘나드는 강력한 표현과 비주얼이 압권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주목해 볼 만한 지점은 확장성일 듯하다. 죽고 죽이는 이 영화의 잔인한 표현 목적성은 할리우드와 국내 특정 블록버스터 세계관을 연상케 한다. 분명 같지만 다른 이 영화 속 세계관 설정과 확장의 가능성은 앞으로 이어질지 모를 흥행에 큰 동력으로 작용할 듯하다. 때문에 주요 캐릭터인 종두와 도일의 개인적 서사 그리고 그 외의 인물들 관계에 대한 과감한 생략까지고 의도된 것으로 읽혀진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늑대사냥’은 시종일관 물어 뜯고 잡아 뜯고 찢어 버린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는 ‘늑대사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분명한 건 이렇다. ‘강렬함’이란 세 글자가 이토록 어울렸던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신 없을 것이란 확신이다. 9월 2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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