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나를 죽여줘’, 이 간절한 역설의 호소
캐나다 희곡 ‘킬 미 나우’ 스크린 리메이크… 상처 투성이 가족 삶
근본적 가족 개념·장애인 돌봄-성-자립·존엄사, 사회적 시선·동의
2022-10-14 01:00:01 2022-10-14 01: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나를 죽여줘’란 도발적 문구의 제목은 일단 논외로 하고서라도 전제로 인식하고 들어가야 할 요소가 존재한다. 우선 이 영화, 희곡이 원작이다. 희곡은 무대극을 위해 만들어 진 대본이다. 즉, 카메라 앞에서 이뤄지는 컷과 컷의 구성이 만든 연기를 위한 대본이 아니다. 때문에 호흡과 흐름 자체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카메라가 비추는 앵글 속 인물들 모습도 그래서 이질감이 크다. 중점적으로 잡히는 인물들 표정이 과장된 느낌이 크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영화 속 인물들, 극단적 상황에 놓여져 있다. 놓여져 있다기 보단 그 안에 던져진 느낌이다. 땅에 처박히고 벽에 부딪치면서 이리저리 함부로 대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상처투성이들이다. 그렇게 인물들 모두가 한 가득 상처를 안고 있다. 누군가에겐 장애로, 누군가에겐 마음 속 상처로, 또 누군가에겐 그 이상의 무엇으로. 그래서 ‘나를 죽여줘’는 말한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살고 싶다는 것을. 제발 살려달라는 얘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중이다. 그 부름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나를 죽여줘’는 분명 불편한 질문이다. 그 불편함, 거북스럽고 보기 싫고 외면하고 싶던 우리 모두의 속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나를 죽여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장 외면하고 싶은 존재의 질문을 한다. 이 영화 속 인물들, 모두 상처 그 자체들이다. 삶 자체를 ‘일상적’이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모두가 가장 비일상적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빠 민석(장현성)은 싱글 파더다. 그는 성인기에 접어든 중증 지체장애인 아들 현재(안승균)를 키우며 산다. 민석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시간 강사다. 그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애인 수원(이일화)이다. 수원은 남편과 사실상 이혼이나 다름 없는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일종의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해도 무방하다.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 입은 수원을 따뜻하게 보듬은 건 민석이었다. 그리고 민석에겐 여동생 하영(김국희)이 있다. 민석과 하영 그리고 현재가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다. 하영은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 중이다. 하영 역시 남자에게 큰 상처를 받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사실 민석 역시 관계에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그 어려움의 대상은 아들 현재다. 성인기에 접어든 현재는 독립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혼자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지체장애인이다. 무엇보다 현재가 최근 들어 겪는 변화는 성(性) 문제. 너무도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중증 지체장애인 현재에겐 다른 영역이 될 수 있다. 아빠가 씻겨주는 목욕 시간에도 비자발적 신체 변화에 현재는 혼란스럽다. 아들의 이런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민석이다. 현재의 문제에 대해 민석과 하영은 고민한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일단 현재의 독립 문제는 그의 활동 보조인 문제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의 친구이자 지적장애인 기철(양희준)이 활동 보조인으로 이들 가족에 새롭게 합류한다.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기철은 가족이 없는 고아다. 그는 현재를 꼬드겨 독립을 하자 부추긴다. 하지만 나쁘게만 볼만한 인물은 아니다. 억눌리고 억압 받아온 현재의 다른 인격처럼 기철은 영화 속에서 자유롭게 모든 것을 표현하는 유일한 주체다. 욕구와 욕망 모두에서 가장 솔직하고 거침 없다. 그런 기철의 기질은 현재의 고모 하영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기철과 하영은 나이와 장애를 뛰어 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제 이들 모두는 하나의 관계 속에 단단하게 맺어진 ‘유사 가족’ 형태로 완성돼 간다. 아슬아슬하게 삶의 끈을 부여 잡고 버티는 이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기댈 곳을 하나 둘씩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완성이 되가는 느낌이다.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하지만 굴곡이 생긴다. 아빠 민석의 몸이 이상하다. 평소 목에서 잘못 자라난 뼈가 문제였다. 그저 고질병이라 생각했는데 문제가 터졌다. 자꾸만 자라난 뼈가 신경을 눌러 몸이 점차 마비되기 시작했다. 민석의 눈에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근데 이제 자신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연인 수원에게도, 장애를 가진 아들 현재에게도, 이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동생 하영에게도. 현재와 하영에게 이젠 둘도 없는 가족이 된 기철에게도. 민석은 짐이 된 듯하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끝내고 싶어한다. ‘나를 죽여줘’는 민석이 아들에게 동생에게 기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수원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그래서 묻는다. 정말 민석은 죽고 싶은 걸까. 죽어야만 이 얘기는 우리 모두에게 던질 질문을 완성하는 걸까.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나를 죽여줘’는 가장 극단적 상황과 사건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낸 뒤 그 안에서 일상에 대한 가장 평범한 질문을 던진다. 제목 그대로 ‘나를 죽여줘’는 민석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먼저 이 얘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희곡이 원작이다. 극중 등장인물 모두가 일상의 관점과 시선에서 해석할 수 있는 비일상성의 연속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극단적 일반화 또는 확증 편향의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작 ‘킬 미 나우’를 쓴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실제 경험이 대부분인 내용이다. 어린 시절 그가 살던 빈민가에서 보고 듣고 몸으로 체득한 얘기가 바로 이 영화의 원작 ‘킬 미 나우’다. 작가가 성장 뒤 대도시로 이주 후 눈에 비친 또 다른 세상은 결과적으로 ‘킬 미 나우’를 완성시키는 동력이 됐다. 이 얘기는 결과적으로 이런 해석이 된다. 서로 동떨어진 세상과 세계 속에서도 삶의 동력과 삶의 가치와 삶의 존재 이유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대도시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 이면에 존재하는 빈민가의 소수자들 약자들 그리고 장애인들. 그들 삶이 비록 극단적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는 상처투성이 아픔일지라도 우리의 시선 속 풍경의 그림은 ‘같다’는 주제 의식을 전하는 듯하다. 민석의 가족이 완성해 낸 삶도, 수원이 선택한 삶도 그리고 영화 마지막 민석이 선택한 방식도, 그리고 민석의 선택을 선택한 아들 현재의 삶도. 우리 모두에겐 같은 삶의 무게일 뿐인데 말이다.
 
영화 '나를 죽여줘' 스틸. 사진=트리플픽쳐스
 
영화 속 등장하는 장애인 돌붐 문제, 성 문제 그리고 나아가 존엄사까지. 사실 이건 외면하고 싶은 ‘나와는 무관한 그것들’이라 치부하고 싶은 것들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건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존재하는 함께 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외면해선 안될 따갑고 아프고 거친 무엇들일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외친다. 이 영화, 그저 존재하고 싶어하는 우리 삶의 호소다. 이 호소를 우린 결코 외면하면 안될 것이다. 개봉은 오는 19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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