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나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곧 (오스트리아)빈으로 간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 여러분 힘내셔서 꼭, 꼭, 우리 아이들 억울함을 풀어주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오스트리아 국적의 한국계 어머니는 지난 22일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담한 마음으로 섰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아들은 모국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자 국내 대학 어학당에 유학을 왔다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됐다.
오는 29일로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이 되면서, 정부에 대한 유가족들의 실망은 분노로 뒤바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측의 책임도, 사과도 없다는 게 이들의 한 목소리다. 윤 대통령이 두 차례 사과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은 여권 내에서조차 사퇴 요구에 직면했지만 윤 대통령의 신뢰와 엄호로 살아남았다.
30여명의 유가족들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첫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심경을 밝혔다. 사고 발생 23일 만이었다. 희생자의 한 어머니는 "새벽 5시30분이 되면 (휴대전화에서)출근 알람이 여전히 울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더 안아주고 더 노닥거려줄걸.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줄걸. 얼굴 한 번 더 만질걸"이라며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을 보였고, 한 아버지는 "아침 밥 먹자고 하면, 부르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구나"라며 딸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배우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네 사진을 머리 맡에 두고 네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 때 엄마는 뜨는 해가 무서워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며 네 침대방에 들어가면 내 손을 꼭 한 번씩 잡던 내 보물 1호. 너를 내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보낼 수가 있을까"라며 아들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의 아버지도 지난 2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그날 이후부터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무서웠고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유가족들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성역 없고 철저한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부실대응 책임자 조사와 문책, 진상·책임 규명 과정에 피해자 동참, 유족 및 생존자 간 소통 기회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마련, 참사의 정부 책임 공식 발표 등 6가지를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앞서 유가족들은 기자회견 전날인 21일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와 함께 국정조사가 경찰 수사와 함께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는 정부 태도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과연 그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었다면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식당에 가고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긴박한 상황에도 상황실을 비우는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저희 아들 사망진단서다. 사망 시간도 추정이고 사인도 미상이다.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알지 못하고 내 자식을 어떻게 떠나보냅니까" 이들은 무엇보다 당국의 진정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바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면담을 마치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여전히 부실했다. 참사 현장에 국가가 없었다면, 참사 이후에는 책임이 없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이처럼 유가족들은 정부의 이태원 참사 이후 대응에 오히려 상처를 입었고, 현재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변 10·29 참사대응TF 집행위원을 맡은 이주희 변호사는 28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국가 행정의 부재에서 일어난 대참사인데 (정부가)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유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등의 배려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며 "유가족들은 행정 과정에서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나 이해, 존중 없이 (정부 대응이)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가족이 희생된 것 뿐만 아니라 정부의 행정적인 사후의 대응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상처를 입고 분노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국정조사든, 이후의 어떤 수사든, 유가족들의 목소리와 의사가 좀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이 아직 마련되고 있지 않은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 변호사는 "지금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지 않다. (유가족들이)개인정보를 공개해도 되니까 같이 아픔을 겪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여러 차레 사람들이 말을 했지만 전혀 공유되지 않고 (정부에서)연결도 해주지 않았다"며 "유가족들이 모여서 슬픔을 함께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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