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로 향하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올해 정기국회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9일 종료됐다. 정치가 사라진 100일간의 정기국회 모습을 통해 국내 정치의 민낯만 고스란히 재확인됐다는 분석이다.
윤석열정부 첫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극한 대립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해임건의안 한가운데 선 국무위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서울대 법대 4년 후배인 이 장관은 임명 당시부터 대통령과의 '특수 관계'가 집중 거론됐다. 야당이 지난 5월 인사청문회 당시 "대통령과 사석에서 어떻게 호칭하느냐"고 묻자 이 장관은 "동문회에서 윤 대통령에게 형님이 불렀다"고 말했다. 야당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자 '깐부(가장 친한 친구를 뜻하는 은어)' 인사"라고 맹비난했다.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 최측근인 이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한데 묶어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 장관이 임명 후 행안부 산하 경찰국 신설을 주도하자 그를 향한 야권의 공격 강도는 더 세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8월 MBC 100분 토론에서 "필요하다면 이 장관의 탄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경책을 꺼내 들었다.
10·29 용산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주무 부처 수장에 대한 책임론이 이어지면서 이 장관은 정쟁의 한가운데에 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경찰력 배치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에 달했다. 고무된 민주당은 "책임자인 이 장관을 즉시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사퇴는 없다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가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권의 빗발치는 사퇴 요구가 있을 때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적극 엄호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오를 당시 배웅하는 이 장관의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리며 힘을 실은 데 이어 지난달 16일 성남 서울공항에 마중 나온 이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다. 사실상 재신임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은 정부가 이 장관에 대한 낙마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대정부 압박 수단으로 지난달 30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했다. 이에 여야는 당장 시급한 내년도 예산안 처리보다 해임건의안을 놓고 대립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야는 기다란 논쟁 끝에 지난달 23일 국조특위 구성에 전격 합의하며 45일간 활동에 돌입했다. 하지만 해임건의안, 예산안 처리를 놓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국조특위 활동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현재 국조특위를 구성한 지 2주가 넘었지만,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등을 실시하지 못했다. 기관보고 등을 하기 전 사전 준비 기간에 이행돼야 할 증인 채택마저도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여야가 지난 합의문에 '자료 제출 등 준비 기간을 거쳐 예산안을 처리한 직후에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등을 실시한다'고 명시한 만큼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국조특위에 주어진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여야는 국조특위 활동 자체를 놓고도 기싸움에 열중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를 '국조 파기'로 규정하고 이를 처리하면 국조위원 사퇴까지 시사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추후 단독으로라도 특위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맞받았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 의장이지난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민주당 정책실에서 열린 여야 '3+3 정책 협의체'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만희 국민의힘 행안위 간사·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성일종 정책위의장·김성환 정책위의장·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김교흥 행안위 간사. (사진=연합뉴스)
이 와중에 정부가 편성한 639조원에 이르는 내년 예산안은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기며 '밀실'로 숨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법정시한이 지난달 30일로 종료되면서 여야의 협상 테이블은 비공식 협의체인 '소소위'로 옮겨졌다.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재부 장·차관 등이 참여하는 소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데다가 회의 내용과 기록이 남지 않아 그간 '밀실 심사'로 불렸다.
하지만 올해는 소소위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여야는 정책위 의장과 여야 간사들이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가동했다. 여기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여야 원내대표까지 추가로 참여하는 '3+3 협의체'까지 만들었다.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비공개로 밀실 협상이다.
이 과정에서 예산안은 누더기가 됐다. 민주당은 이번에 예산안 감액 규모를 '최소 5조1000억원'으로 정한 반면 국민의힘은 2조6000억원 규모 이상의 감액 규모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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