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부터 서울에 8146번 버스가 생겼습니다. 기존에 146번 버스가 운행하던 상계동~강남역 구간에 동일한 노선으로 운행하는 새벽전용버스입니다. 기존 146번 버스 첫 차 시각인 새벽 4시5분보다 15분 빠른 새벽 3시50분부터 하루 3번 운행합니다.
새벽전용버스가 생긴 이유는 146번 버스의 첫 차 승객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를 다니는 373개 버스 노선 중 유일하게 첫 차가 3대 동시에 출발할 정도입니다. 승객 대부분은 서울 강남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청소·경비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첫 차에 실어야만 2시간 가까이 달려 강남에 있는 직장에 갈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 전에 청소를 마치려면 새벽 4시5분 첫차도 모자랍니다. 2019년에 빅데이터를 근거로 첫 차를 두 대로 늘린 것도 모자라 이후에 한 대 더 늘렸으나 여전히 첫차부터 만원버스였습니다.
3대로 모자란 첫차 대신 새벽전용버스를 만들어준 건 과분하게도 행정부 최고 권위자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입니다. 한 총리는 새해 첫 차에 올라 승객들의 애로를 청취했고, 첫차를 만들어달란 승객의 요청을 무겁게 들은 한 총리가 곧바로 오세훈 시장에게 전화했고 이후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며칠 후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처 수장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퇴근길 사당역에서 경기도로 악명높은 체험을 한 원 장관은 “7770번 버스를 눈 앞에서 6대 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SNS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1만2000석 이상의 좌석을 더 투입해 출퇴근 전쟁을 끝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원 장관의 말대로라면 늦어도 3월이면 버스가 몇 대씩 동시에 와도 줄 서 있는 승객수가 그대로라는 사당역의 악명 높은 전설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씁쓸함이 남는 건 왜일까요. 146번 버스가 저 애환을 품고 달렸던 건, 사당역을 오가는 경기도민이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했던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십수년째 계속된 애환과 고생이 굳이 높은 분 귀에 들어가야만 해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허망함일지도 모릅니다.
146번 버스나 사당역이 아닌 어느 곳에라도 애환과 고생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장 버스 노선 면허권자인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더 낮은 직책에 있는 누구라도 주위의 이야기에 관심갖고 진작에 움직였다면 어땠을까요.
분권, 말 그대로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나눠 덜 높은 이도 힘을 갖는 일입니다. 그런 사회라면 굳이 총리나 장관까지 가지 않아도 버스 노선 바꾸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권한을 윗 사람이 갖고, 아랫 사람은 윗 사람 눈치를 보는 사회가 우리의 이상향은 아닐 겁니다. 고생과 애환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바꿀 방법을 찾는 법을 우린 배우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 잊어버린 걸까요.
정말 보고싶은 건 최고 권위자의 힘이 아니라 146번 버스에 실린 누군가의 목소리, 사당역에서 매일 파김치가 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힘을 갖고 그들의 버스 노선을 바꾸는 모습입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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