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주혜린 기자] 올해 정부가 하반기에는 경기가 반등하는 '상저하고'의 흐름을 전망하고 있지만, 좀처럼 회복의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장기 부진의 늪에 허덕이는 가운데 핵심 산업인 반도체 회복도 예상보다 지체되면서 하반기 반등에 대한 부정적 지표가 쌓이고 있습니다.
2일 <뉴스토마토>가 국내 제조업체들의 하반기 경기실사지수(BSI)를 종합한 결과, 기업들이 체감하는 실적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문가들도 반도체 수출의 더딘 회복을 기대하지만 내수로 버틴 저성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국은행의 ‘2023년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다음 달 업황전망BSI는 한 달 새 1포인트 하락한 75로 조사됐습니다. 제조업(72)이 전월 대비 1포인트 내렸으며 비제조업은 한 달 전과 같은 78을 기록했습니다.
제조업 전망 하락은 전자·영상·통신장비(-7p), 1차금속(-5p) 중심이었습니다. BSI가 기준선 100보다 높으면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전월보다 긍정적,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이라는 뜻입니다.
한은은 "감산의 영향으로 하반기에는 가격이 상승하고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회복이 지연되면서 비관적으로 응답한 업체가 늘어났다"며 "비중이 큰 반도체 업종에서 부정적 응답이 늘어난 것이 제조업 업황 전망 하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제단체들이 별도로 집계하는 BSI도 부정적 시각이 우세합니다. 전경련이 금융업을 제외한 업종별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7월 종합경기 BSI는 95.5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7월 제조업 BSI는 89.8로 작년 4월부터 16개월 연속 기준선을 하회했습니다.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통신장비 BSI(95.2)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 연속 기준선을 하회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30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BSI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 3분기 제조기업들의 전망치는 91로 직전 분기보다 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8개 분기 연속 기준선을 밑돌고 있습니다. IT·가전(83), 전기(86), 철강(85), 섬유·의류(75) 등 주력 업종들은 기준치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대한상의는 "부문별 BSI도 내수(94→90), 수출(97→94) 모두 부정적 전망이 전분기보다 많아져 하반기 들어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주요 기관들의 전망과는 다른 모양새"라고 진단했습니다.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지만 다행히 적자폭을 줄여 가고 있습니다. 올 6월까지 상반기 한국의 수출과 수입은 모두 지난해와 비교해 줄어들며 29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적자폭이 줄어들어 전체적으로는 수출 6309억 달러, 수입 6605억 달러로 29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무역협회는 "하반기 수출은 지난해 4분기(10∼12월) 수출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로 감소 폭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행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올해 정부가 하반기에는 반등하는 '상저하고'의 흐름을 전망하고 있지만, 좀처럼 회복의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우리 경제의 반등은 수출과 민간 소비 회복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 부진이 급격히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내수 회복을 통해 하반기 본격적인 반등을 모색해야 '상저하고' 경로를 밟을 수 있습니다. 정부도 내수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추경호 부총리는 "물가 상승세가 확연히 둔화하고 고용 호조도 이어져 왔으나 경기 측면에서는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감소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다만 최근 소비자심리가 반등하고 무역수지 적자 폭이 축소되는 등 개선 조짐도 일부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내수 상황은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제조업 경기 부진 속에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며 소비마저 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수출경기 개선 등으로 경제 펀더멘털이 개선될 수 있지만 물가상승률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은은 6~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둔화하다가 연말엔 3%대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정부 재정 여력 또한 세수 감소 등으로 하반기 긴축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상반기 재정 집행률이 높은 데다, 최근 대규모 세수 감소로 하반기 정부소비 둔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집행은 없다는 입장을 밝혀 정부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대외 시장의 불확실성도 여전합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높은 물가와 고금리에 따른 신용위축이 경제활동 둔화를 상당 기간 이어가도록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기업들은 경기침체 심화로 인한 실적부진으로 경기심리가 매우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선과 노동시장 개혁, 규제 개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생산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가격변수(최저임금, 금리, 물가 등)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홍우형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감산했고, 수주 등이 실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예년처럼 반도체는 잘 나가 건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 최악은 지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고이자율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에 세계 경제적으로도 불황기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상저하고에서 '고'가 얼마나 '고'인지가 문제 아닐까"라며 "반도체는 좀 살아날 것 같긴 한데 경기 자체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진단했습니다.
김기흥 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반도체 재고가 남아서 실질적으로 감축을 했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 추세로 가고, 반도체 수출 실적도 상승 추세로 돌아가면 우리 수출도 살아날 여지가 있다"며 "최근에 무역수지, 반도체가 약간 회복 기미가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살아날 수 있는 여지는 조금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습니다.
김 교수는 "다만 소비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소득이 높은 쪽은 소비가 늘어나는데 저소득과 중간 계층의 소비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내수로 버틴 저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내수도 최근 금리가 상승하고 부동산 경기 침체인 상황에서 소비심리가 많이 위축됐다"고 우려했습니다.
올해 정부가 하반기에는 반등하는 '상저하고'의 흐름을 전망하고 있지만, 좀처럼 회복의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은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 (사진=뉴시스)
세종=주혜린 기자 joojoos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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