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습니다.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라는 전문성을 인정받았는데요. 그로부터 8년 뒤인 2016년 총선, 민주당에 '넘사벽'인 서울 강남을 지역구에서 승리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중·고교를 나온 부산행을 권했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울산·경남(PK)을 뒤집을 수 있는 상황에서 고집을 부린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승리했습니다. 전 전 위원장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민주당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그를 업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그는 2012년 총선 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직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이 송파갑에 전략공천하겠다고 했음에도 강남을을 지키는 '결기'를 보인 터였습니다. 당시 <연합뉴스>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나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들이 구제 차원에서 지역구에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의원이 보여준 '겸양지덕(謙讓之德)'은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는 박진 의원에게 패배했고, 두 달 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임기를 지키려 했으나 새 정부는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보했습니다. 윤 대통령까지 직접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사퇴를 종용했고, 감사원이 근태까지 문제 삼아 전방위로 감사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압박했습니다. 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3년 임기를 다 채우고 퇴임했습니다. 자리만 지킨 게 아니고 자신에 대한 표적감사 의혹을 부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감사원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수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서초동에 버금하게 여의도에도 흔한 변호사 출신 전문가가 12년 만에 '투사'로 변모하게 된 겁니다.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워 승리한 투사"를 기치로 걸고, 이른바 '정치 1번지'이자 감사원이 있는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그를 22일 종로구 창신동에서 만났습니다. 아래는 문답요약입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로 등록한 그는 지난 2020년 총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해바라기를 달고 선거 운동에 임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번 총선 시대정신은 '윤석열정권 심판'"
-왜 종로를 선택했습니까.
이번 총선은 윤석열정권 심판이 시대정신입니다. 정권의 무도함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던 당사자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기치를 걸고 나온 겁니다. 제가 정치 1번지 종로라는 최전선에서 깃발을 들고 총선에 임하면 민주당의 총선 승리도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를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감사원이 종로에 있지 않습니까?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종로 출마의사를 접고 곽상언 지역위원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담을 많이 느끼십니까.
어느 지역에 가든 경쟁자가 있고, 돕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큰 변수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곽 위원장이 먼저 지역을 다지던 분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우하고 선배로 잘 모실 생각입니다.
"'이재명 헬기' 조사 발표, 국면 전환용 '정치 행위'"
-민주당 내 당대표 정치테러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테러 상황에 대해 1차적 책임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에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배경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정치 테러'로 규정했습니다. 총리실 대테러센터에서는 이번 사건 관련 문자를 보냈고요. 정권이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대응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테러방지법에 의하면 테러 행위에 대한 모든 지휘 감독 체계는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안보실과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제대로 대응했는가, 총리실 문자에 대해 관여했느냐는 하는 점을 묻는 겁니다. 통상 총리실 대테러센터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파견돼 있습니다. 국정원이나 안보실 컨트롤없이 그런 문자가 나가는 것은 테러방지법 체계상 어렵습니다. 일련의 축소·왜곡 사태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있는 국정원과 안보실에 잘못이 없는 것인지 따져야 합니다.
-처음에 국민들에게 사건을 오도하게 만든 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의 문자 작성 과정에 안보실이나 국정원이 개입했느냐를 묻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테러방지법 6조에 대테러센터에서는 관련 상황 문자를 발령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정보를 보내야 하는 거죠.
-이재명 대표 헬기 이송에 대해 권익위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권익위원장으로 출신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권익위 신고 접수 건수가 매년 1만 건 가까이 됩니다. 권익위는 조사해서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관계기관이나 수사기관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권익위는 공익 신고자 보호기관이기 때문에 신고한 사실조차 보안 대상입니다. 신고 사실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기자들이 물어본다 해도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인 정도가 아니라 권익위 부위원장이 직접 브리핑을 하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이례적인 건데, 사실 정치적 행동입니다. 테러 사건의 프레임을 전환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죠. 거기에 권익위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이고요.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는 통상적으로 공개하지 않습니까.
권익위에는 강제 조사권이 없습니다. 행정조사에 불과합니다.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혐의는 있어 보인다'고 관계기관과 수사기관에 확인해달라고 넘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외부에 노출되면 혐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죠.
그래서 제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수사기관에 결과를 보낼 때도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혐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권익위의 발표는 수사기관이나 감독기관에 최종 징계가 확정됐을 때 비로소 발표할 수 있는 겁니다.
"윤·한 충돌, 약속대련 아닐 것…김건희 특검 통과 두려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불법입니다. 만약 비서실장을 시켜서 한 위원장에게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면 명백한 탄핵 사유입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지명해서 보낸 사람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벌써 몇 명째인가요? 이준석·나경원·김기현에 이어서 한 위원장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쫓아낸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길 매우 심각한 사안입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약속 대련'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런 것 같지 않아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과 김건희 특검법이 있지 않습니까. 한 위원장이 특검을 수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한심’ 공천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아마 김건희 여사도 화를 내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언질를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로 등록한 그는 지난 2020년 총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해바라기 브로치를 달고 선거 운동에 임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건희 명품가방을 창고에?…장물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
-대통령실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가방을 잘 보관해두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권익위원장 출신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청탁금지법 위반 범죄에 사용된 물건이라는 점에서 형법상 장물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통령실의 해명은 대통령실이 장물을 보관하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함정 취재'가 권익위 조사나 수사의 결론에 영향을 미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의상실에 전화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을 놓고 몰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건은 비슷한 구조입니다. 몰카나 함정 취재가 되려면 선물을 받는 사람이 받을 생각이 없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선물을 가져갈 것을 알았고, 당사자가 확인을 하고 받았잖아요? 범죄를 저지르려는 생각을 갖고있던 겁니다. 선물을 받으려는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전달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함정 취재라고 보기 어렵죠. 결론적으로 범죄 성립에 영향이 없는 겁니다.
-현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 들어가면 통과가 가능할까요.
국민의힘이 재표결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적은 표로도 통과가 가능합니다. 여당에서 전원이 아닌, 일부만 들어온다면 이탈표는 10표 정도만 확보해도 되는 거죠. 더구나 이번 재표결은 무기명 투표입니다. '총선 국면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김건희 여사가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독려하는 의원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한동훈 충돌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죠. 국민의 비대위원들도 관련 목소리를 내고 있던데, 국민의힘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밀실에 들어갔을 때 국민 여론을 따라가는 의원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천 탈락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특검에 찬성할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전 전 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과 관련해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TV 등에서 윤석열 대통령 보면 어떤 생각이 납니까.
제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정반대로 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제가 임기를 지키려고 한 것은 정치적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법에 정해진 임기를 지키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검찰총장 시절에 임기는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씀하셨죠. 오히려 문재인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을 포용하고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훨씬 올라갔을 겁니다.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남 도전 때보다도 강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사가 된 느낌입니다.
제가 18대 총선에서 정치에 입문했을 때는 전문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정의에 대한 관념이나 사명감은 뚜렷했지만, 공격하고 투쟁하는 것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를 투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윤석열정권을 겪으면서 저도 모르게 투사로 바뀐 것 같습니다.
권익위원장을 하면서 정권의 무도하고 불의한 접근을 경험한 거죠. 목격자고 당사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저를 투사로 변모케 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투사는 저를 의미하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권익위원장을 하면서 정치를 그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이제는 좀 편하게 살라고 말씀들이 많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로서는 타성적으로 국회의원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2008년, 2012년에) 모두가 말리는데도, 강남에 도전했던 건 사회적 약자와 어려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은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강남에서 지역주의와 계급주의를 깨는 데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강남은 작은 경상도라고 할 만큼 경상도 출신 인구가 많기도 하고 지역주의가 심합니다. 망국병인 지역주의를 깨고 싶었습니다. 계급주의와 지역주의를 깨는 마중물 역할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사실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도전한 거였습니다.
지금 저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다시 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국회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이것이 지금 제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남 도전 때보다도 아주 강합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이죠.
대담=황방열 선임기자, 정리=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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