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제22대 총선을 79일 앞두고 '여권 내 권력 투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 2인자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실상 사퇴까지 압박한 모양새인데요. 사실상 2인자를 버린 셈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최근 불거진 한 비대위원장의 공천으로 갈등이 시작됐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막에는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두고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반대 의견을 내면서 갈등이 극대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총선을 앞두고 이런 사태가 터진 배경에는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여사라는 '역린'을 건드린 것이 갈등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한 위원장은 최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소신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앞서 한 위원장은 김 여사가 2022년 9월 재미 목사 최재영씨로부터 '디올' 가방을 선물 받는 장면을 공개한 '서울의 소리' 보도를 두고 비대위원장 취임 직전 기자들에게 "몰카 공작이라는 건 맞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지난 18일 "함정 몰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그렇지만 전후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고, 걱정하실 만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음날인 19일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이번 사태의 기름을 부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한 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김경율 비대위원도 여러 인터뷰에서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의 감정을 추스를 방법"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이 와중에 한 위원장은 김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전략공천을 공식화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불쾌감을 내비쳤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19일 "선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영부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했고, 21일에도 고위 관계자는 "공작적 행태" "함정을 파 궁지로 몬 것" 등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실의 기류가 알려지자,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도 일제히 한 위원장을 공격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②공천권에 대한 도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도 도화선이 됐습니다. 특히 김건희 여사 문제를 공론화한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공천 문제가 얽혀있는데요. 앞서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전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는 공천관리위원회의 시스템 공천 방침을 밝힌 다음 날 마포을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지역 당협위원장(김성동 전 의원)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김 비대위원의 출마를 알린 것입니다. 김 비대위원은 이와 관련해 "김 전 의원의 출마 의사가 없는 것으로 잘 못 알고 한 비대위원장에게 잘못된 정보를 드렸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대중적 지지도를 가진 한 비대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을 낙점하는 식이 된 공천 논란을 두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대통령실은 지난 19일 "시스템 공천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 특혜는 없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 발표 소식을 대통령실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중, 한 위원장의 무리한 공천까지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대통령실에서 제동을 건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갈등 진화에 나섰습니다. 정 위원장은 이날 '김경율 마포을 공천' 논란을 두고 "한동훈 위원장이 다소 오버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실과 한동훈 위원장이 말한 얘기는 방향이 같다"고 수습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오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광주시당 신년인사회 참석 직후 지지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위원장의 조기 부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당정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윤 대통령과 당권을 잡으면서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 자리를 꿰찬 한 위원장 사이에 '힘겨루기' 양상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데요.
한 위원장은 이날 국회 출근길에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을 지적하는 취재진의 질의에 "평가는 제가 하지 않겠다"며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발언인 셈인데요.
이어 그는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보면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비대위원장은 당대표와 달리 자진사퇴를 하지 않는 한 강제 교체가 어렵다는 점을 내세우며 사실상 힘겨루기를 피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아울러 한 위원장이 출범 2주 만에 전국적인 인기와 지지도를 바탕으로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 등에 힘입어 차기 대권 경쟁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양강을 이루는 등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는 점도 윤 대통령에게는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실제 총선이 끝나면 윤 대통령이 공천권 등 더 이상 당을 장악할 수단이 없습니다. 이 장악력은 당연히 '현재 권력'인 윤 대통령에서 '미래 권력'인 한 위원장으로 무게의 추가 옮겨지게 되는 데요.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현실화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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