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허영인 회장이 구속되면서 SPC그룹 기류가 초상집처럼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허 회장은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에게 노동조합을 탈퇴하라고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허 회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적은 있었지만 구속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간 허 회장 구명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SPC 내부는 침통한 표정입니다. 최근 한 달 새 강선희 대표 사임, 황재복 대표 구속, 허 회장 구속 등 수뇌부가 사실상 와해되면서 국내외에서 추진하는 사업 전반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SPC가 프랜차이즈 공룡인 까닭에, 피해는 브랜드 이미지 손상을 입은 계약점주들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SPC는 컨트롤타워 없이 본부별로 각자경영에 나서는 등 비상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5일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며 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허 회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나선 지 6개월 만입니다. 검찰은 SPC그룹이 2019년 7월부터 2022년 8월까지 PB파트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고,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허 회장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SPC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허 회장의 구속만은 막아야 한다며 전방위로 뛰어다녔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2월 백모 전무는 허 회장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검찰 수사관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지난달 22일에는 황재복 공동대표가 허 회장과 같은 혐의로 구속되며 검찰 칼끝이 정점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선희 공동대표는 남편 선거운동 지원을 이유로 3월2일자로 전격 사임했습니다. 임기 1년 만의 중도 퇴진이었습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그룹 정점에 있는 허 회장이 끝내 구속되면서 SPC는 수뇌부가 모두 이탈한 경영공백 상태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중점 추진 사업들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특히 해외 시장을 노린 글로벌 사업에서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됩니다.
주력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는 현재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10개국에 550여개 매장이 진출해 있습니다. SPC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할랄 시장 공략을 위해 말레이시아 현지공장 건립 계획을 세우는 등 해외 판로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허 회장도 최근까지 유럽연합(EU) 제빵 대국인 이탈리아 진출을 위해 마리오 파스쿠찌 회장과 직접 만나는 등 공을 들였는데요. 해외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허 회장이 구속됨으로써 SPC의 글로벌 확장세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SPC 내 각 브랜드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주들이 입을 피해가 우려됩니다. SPC 산하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작년 12월 기준 △파리바게뜨 3396개 △배스킨라빈스 1687개 △던킨 631개 △파스쿠찌 477개 등입니다. 가맹사업 브랜드를 운영하는 점주들 상당수가 소규모 자영업자임을 감안하면 회장의 구속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매출 타격이 염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허 회장은 파리크라상 상표권을 배우자에게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전력이 있고, 증여세 회피를 위해 파리크라상,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저가 매도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되는 등 '오너 리스크'를 반복적으로 노출시켰습니다.
SPC 관계자는 "(구속영장 발부) 상황에 대해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경영 공백이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며 "각 최고경영자(CEO) 밑의 본부장급 인력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누군가 대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허 회장이) 고령인 데다 건강도 안 좋은 상황이라 안타깝고 걱정스럽다"며 "허 회장은 얼마 전에도 검찰의 부당한 기소로 법원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앞으로 전개될 조사와 재판 과정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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