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유지웅·윤지혜 기자] 87년 체제의 헌법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에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대결주의'로 인해 개헌 논의가 공회전하고 있습니다. 역대 국회의장단은 '선 개헌·후 발효'라는 2032년 개헌안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면서도, 여야 합의를 도출해 정치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3일 <뉴스토마토>는 역대 국회의장단에게 개헌의 필요성과 임기단축 개헌, '선 개헌·후 발효'라는 2032년 개헌안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주영 전 국회 부의장,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이 참여했습니다.
역대 국회의장단은 2032년 개헌안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역대 국회의장단은 87년 체제의 헌법이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라는 공통된 제언을 내놨습니다. 문 전 의장은 "4·19 혁명과 6·10 항쟁 등 국민들의 혁명정신이 도화선이 돼 개헌이 이뤄져 왔다"며 "촛불혁명으로 국민이 세상을 바꿨음에도 아직까지 6공화국이다. 7공화국 헌법이 반드시 필요한 때"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대한민국 정치의 최종 문제점은 정치의 실종인데, 그 원인이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있다"며 "권력 분산을 위해서는 임기 단축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전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기 때문에 하루빨리 개헌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습니다.
이 전 부의장과 주 전 부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4년 중임제 적용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이 전 부의장은 "개헌안으로 거론되는 현 대통령에 대한 임기 단축은 불가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가운데 4년 중임제를 추진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 전 부의장은 "원칙적으로는 5년 단임제와 4년 중임제에 장단점이 있지만 5년 단임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며 "결국 4년 중임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2032년 개헌이라도…시도 자체가 중요"
역대 국회의장단이 공통적으로 거론한 개헌의 방향성은 권력구조 개편인데요. '4년 중임제'를 추진하되,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지난 2021년 문재인정부 당시 여당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2032년 3월에 4년 연임 대통령제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국회에서 개헌안 합의를 진행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추진하고, 개정헌법 부칙을 통해 오는 2032년에 효력을 발휘하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선 개헌·후 발효' 개헌안인데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도 해당하지 않으며, 2032년 효력 발효인 만큼 현재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도 보장됩니다.
역대 국회의장단도 '2032년 개헌'에 대해서는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문 전 의장은 시급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2032년 개헌이라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을 피하는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전 의장도 "당장 개헌하고 당장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2032 개헌'도 차선책으로는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정 전 의장은 "그럼에도 차선책일 뿐 개헌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이 전 부의장은 "대선과 총선이 근접하는 선거 내지는 동시 선거로 개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며 "개헌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주 전 부의장은 "윤석열정부와 민주당의 대치 국면을 고려하면 22대 국회에서 어떤 것도 이뤄질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면서도 "8년 혹은 10년 뒤에 시행하는 부칙조항을 달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5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60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이 무산되는 순간을 어린이 방청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도 마다할 이유 없어…결단 필요"
5년 단임 대통령제 개헌을 위해서는 개헌안 발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유불리를 따질 가능성이 높은 국회보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는 조언도 나옵니다.
문 전 의장은 "헌법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정치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결심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아무리 발의해도 소용이 없다"도 꼬집었습니다. 헌법 개정의 가장 중요한 요체가 권력구조 개편인 만큼 대통령의 결단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정 전 의장은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리더들이 당면한 현안에만 매달린 채 국가의 근본적 과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국민들의 3분의 2, 국회의원의 80~90%가 개헌을 찬성하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들, 정치 리더들이 개헌을 막아온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전 부의장은 "윤 대통령도 본인 임기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이미 많이 있었고 공감대도 있었기 때문에 윤 대통령에게 하나의 업적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동인·유지웅·윤지혜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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