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큐텐그룹 산하 티몬·위메프(티메프)의 미정산 사태가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규제 강화와 더불어 이커머스 사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확대로 시장 위축 전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허술한 규제로 대규모 티메프 피해자가 발생한 만큼 보호 장치 마련은 당연한 처사지만, 자칫 기업 성장을 저해하고 전체적인 이커머스 시장 축소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커머스 관련 규제 마련에 착수한 가운데 이커머스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7일 '위메프·티몬 사태 추가 대응방안 및 제도개선 방향'을 통해 전자상거래법을 적용하는 이커머스 업체에 대한 정산 기한 도입과 판매대금 별도 관리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 여러 개가 발의된 상태입니다.
대규모 유통업자가 판매자에게 대금을 40~60일 이내에 정산하도록 법제화한 것과 달리 전자상거래법을 적용받는 이커머스 업체는 정산 기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판매대금을 금융기관 등에 맡겨 별도 관리하는 규정도 없어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죠.
업계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플랫폼을 열어두고 셀러와 고객들이 거래하도록 만든 공간으로 중개자 역할을 해왔다"라며 "민간이 자율적으로 거래하는 공간을 정부가 크게 개입하지 않았지만 티메프 사태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보니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칼을 빼 들면서 이커머스업계는 잔뜩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티메프에서 상품을 판매했음에도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판매자와 환불을 받지 못한 소비자가 거리로 나가 피해 복구를 외치는 판국에 이번 사안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드러날 수도 있고, 또 규제 방향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아직 알 수 없다"며 "사고는 큐텐그룹이 쳤지만 이커머스업계 전체가 도마 위에 올려졌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티몬 구사옥 앞에서 티몬, 위메프 연합 피해자들이 검은 우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방위 규제 지양…부작용 걸러내는 핀셋 규제 필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파는 판매자와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망을 갖추는 것은 마땅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규제 빗장으로 신생 기업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정보통신(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몸집을 불린 업체들이 많습니다. 일례로 쿠팡은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에서 성장을 거듭하며 현재는 전통적인 국내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까지 올랐죠.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로 인지도를 쌓은 컬리와 오아시스는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확보로 지속 성장을 꾀하는 실정입니다. 두 업체는 앞서 기업공개를 추진했으나 주식시장 약세로 IPO 시기를 연기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이커머스 업황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가 마련될 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는 나오기 힘들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꼭 법문에 명시된 규제가 아니더라도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등 시장 분위기 악화도 우려되는 사안입니다. 기술력이나 사업 모델이 획기적인 기업일지라도 투자 길이 위축될 수 있어서입니다.
실제 이커머스 사업에 대한 의구심 커지면서 향후 국내 업체들의 IPO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을 모태로 두는 등 든든한 뒷배를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는 환경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IPO 추진 경험이 있는 한 이커머스업체 관계자는 "이전에도 이커머스 성장성만 바라보고 IPO를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돼 왔다"면서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업체의 재무구조 문제와 향후 규제 강화에 따른 시장 환경 변화가 부각됐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커머스업체 관계자는 "플랫폼의 거래액이 크다는 점이 더 이상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적자를 줄이고 흑자를 내야 기업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그래야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자금을 수혈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시장 위축을 경계하고 흙수저 창업 신화가 옛말이 되지 않도록 규제에 나서되 개선 방향을 잘 설정하고 부작용을 걸러내는 핀셋 정책을 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보여주는 신규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며 "따라서 업체 전체에 똑같이 적용되는 일괄적인 규제 대신 기업 규모별로 차등 적용해 신규 업체의 성장 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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