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은 것으로,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습니다.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정한 겁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나온 승소 결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며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약돼 있다"며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해 입법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입법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 하는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하는 내용입니다. 청구인들은 2030년까지의 배출량 감축 수준도 충분치 않아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양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30년까지 감축 목표량 헌법소원은 기각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은 2026년 2월28일까지만 효력을 발휘하게 됐으며 이후에는 개정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아울러 이날 결정에서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판단도 이뤄졌습니다. 다만 부문·연도별 감축목표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위헌확인 의견을 낸 재판관이 전체 재판관 9명 중 5명으로, 정족수 6명에 미치지 않아 위헌 결정까지는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헌법소원을 낸 시민들은 일부인용에 대해 아쉬움이 섞인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기후소송 변론에 참여한 바 있는 한제아(12)양은 선고 직후 헌재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며 "오늘 결과에 상관없이 없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도 "위기가 아닌 권리의 시간", "위기가 아닌 대응의 시간"이라는 구호를 거듭 외쳤습니다.
앞서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이 탄소중립기본법의 전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헌재에 위헌 의견을 내는 등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는 와중에 이번 결정이 나왔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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