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범죄 영상물 문제가 확산하자 정부가 주요 유통 창구로 꼽히는 메신저 ‘텔레그램’을 정조준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경우 나몰라식 배짱 운영과 제도적 허점 속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텔레그램 (사진=연합뉴스)
3일 경찰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경찰은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를 적용해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한국 경찰이 텔레그램 법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암호화 정책을 무기로 지난 2014년 사이버 검열 논란 이후 카카오톡의 대항마로 급부상해 지금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신저앱인데요. 송신 메시지의 암호화와 자료 삭제가 가능한 대화방 ‘폭파(폐쇄)’ 기능 등으로 범죄의 온상으로도 지목돼 왔습니다. 과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n번방’ 사태 당시에도 불법 성착취물의 주요 유통 경로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 압수수색 등에 대해 국내 수사기관의 직접적 통제를 받고 있지 않는 데다, 자료 제출 등 요구에도 쉽사리 응하지 않아 범죄가 발생해도 수사에 난항을 겪어 왔는데요. 텔레그램은 불법 영상물 유통과 관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차단 조치에 일부 응한 것이 고작일 뿐 미온적인 대응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특히 텔레그램은 제도적 허점을 틈타 국내 규제 법망도 교묘히 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개인정보 침해사고 등 국민 권리 보호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의무화했는데요. 이 법에 따르면 전년도 매출액 1조원 이상, 정보통신서비스 전년 매출액 100억원 이상, 법을 위반해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의 안전성을 해치는 사건·사고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 받은 경우 대상이 됩니다.
이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해외 사업자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한 상태지만, 텔레그램은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는데요. 매출액 등이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과거 n번방 사태처럼 서비스 이용의 안전성을 해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대리인 등록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를 강제할 방법 또한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특히 해외 특정 기업을 지목해 규제하기 어렵다는 환경도 텔레그램 배짱 대응의 배경으로도 꼽힙니다. 해외 사업자의 경우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그만이기에 뾰족한 대책 마련도 쉽지 않습니다.
이에 국제 공조를 통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요. 전세계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국제 사회가 합심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만의 힘으로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잘 통하지 않는다”라며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의 경우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국제 공조를 이어가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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