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디폴트옵션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장기간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원리금비보장형에 적극 투자해 노후 보장은 물론 증시 부양의 '마중물' 역할까지 하도록 유인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처는 초저위험자산에 치중한 모습입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원리금보장형에 치중한 현재 구조를 개선하고 가입자 선택지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디폴트옵션 90%가 원리금보장형
(그래픽=뉴스토마토)
8일 금융감독원 및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디폴트옵션 상품에 가입한 퇴직연금 적립액은 32조9095억원으로 작년 말 12조5520억원 대비 20조3575억원(162.19%) 증가했습니다. 디폴트옵션 적립금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적립금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혹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는 제도입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쫓아가기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도입됐습니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됐음에도 취지가 무색하게 적립금 대부분은 초저위험 상품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대 수익률과 투자 위험도에 따라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 등 4가지로 구분됩니다.
작년말 적립금 12조5520억원 가운데 초저위험 상품은 89%(11조2879억원)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디폴트옵션 적립금(32조9095억원)은 2배이상 증가했지만, 여전히 89%(29조3478억원)가 초저위험 상품입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고위험 상품은 1.47%(4834억원)에 그쳤습니다.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적립금액은 늘었지만, 여전히 예적금 등에 방치되고 있는 셈입니다.
초저위험 상품군은 원금이 보장되는 정기예금과 약속된 이율을 제공하는 이율보증형 상품으로 구성됩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인 만큼 수익률도 저조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초저위험 상품 수익률은 3.47%에 불과합니다. 이는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62%은 물론 기준금리 3.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비교 시점에 차이가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초저위험 상품의 수익률은 거의 ‘0’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나마 지난해 초저위험군 수익률이 3%대를 기록한 것도 고금리 상황이 영향입니다. 실제 직전 5년간 전체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1~2%대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고위험 상품의 1년 평균 수익률은 16.55%, 중위험, 저위험은 각각 12.16%, 7.51%를 기록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가입자 선택권 높여야
시장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보장제도로서 역할을 하려면 가입자들의 적극적 운용과 함께 제도적 보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현행 디폴트옵션에선 초저위험 상품에 자금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연금투자연구소장은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형에 적립금이 쏠리는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에 무관심한 상황에서 금융사가 디폴트옵션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유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손실이 나면 비판을 맏는데 수익률을 재고에 따른 인센티브는 없고, 투자형 상품 편입이 강제 사항도 아니다"며 "퇴직연금의 적극적 운용을 위해 디폴트옵션 도입내놓고 원리금보장형을 적격상품에 포함시키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 등 해외 국가들의 퇴직연금 자산배분 구조를 보면 미국(401k)의 경우 △주식형 펀드 42%, △타깃 데이티드 펀드(TDF) 31% 등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기본적으로 투자형 상품으로 선택되기 때문에 은퇴 준비자금은 증시로 유입돼 지수를 받쳐주는 역할도 합니다. 호주 퇴직연금 역시 △주식 53% △채권 21% △인프라 8% △부동산 7% 등으로 분산 투자됩니다. 이들 국가의 퇴직연금 10년 평균 수익률은 7~8%에 육박합니다.
김 소장은 퇴직연금 사업자를 복수로 선정하도록 하는 등 가입자의 선택권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현행 제도에서는 재직 중인 회사의 퇴직연금 계좌를 관리해 주는 퇴직연금사업자(금융사)를 변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제도적으로 퇴직연금 사업자를 복수의 금융사로 선정하도록해 근로자가 수익률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근로자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디폴드옵션 도입 1년 성과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위험도 선택에 따라 연간 수익률은 최대 4배 이상 차이났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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