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대규모기업집단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수와 소속회사 수가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윤석열정부 들어 공정거래법 등 경제력 집중 규제를 완화한 조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환율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수출에 도움 되지만 내수 경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윤정부가 강조한 대로 낙수효과 나마 있어야 하지만, 되레 기업집단 주력 산업인 제조업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고물가로 인해 국민의 실질소득도 감소했습니다. 소득수준 하위 가계는 근로소득이 줄고 식료품 지출이 커져 힘겹습니다. 반면, 상위 가계는 소득이 급증해 사치품 소비가 늘어나는 등 양극화가 짙어졌습니다.
윤정권서 대기업 매출, GDP 97% 도달
23일 통계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수가 현 정부들어(2022년 5월~) 부쩍 늘어났습니다. 2021년 71개였는데 올해 지정집단은 88개나 됐습니다. 이들 대기업의 전체 매출도 같은 기간 1607조원에서 2155조원까지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명목GDP에서 대기업 비중이 폭증했습니다. 지정집단 매출이 GDP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78.1%에서 2024년 89.4%가 됐습니다. 2023년엔 96.9%까지 도달했었습니다. 2024년(전년 결산 기준) 비중이 다소 줄어든 건 기업집단 1, 2위 삼성, SK의 반도체 부진 여파로 분석됩니다. 지정집단의 소속회사 수는 2021년(5월1일 기준) 2612개에서 2024년 3318개까지 늘어났습니다. 대기업의 지네발 확장으로 산업 곳곳에서 마찰이 부각됩니다.
이처럼 규모가 큰 대기업이 늘어나면 윤정부가 규제완화 명분으로 내세웠던 낙수효과도 생겨야 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대다수 국민 생활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대기업집단 주력인 제조업의 취업자 추이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감소했습니다. 2019년엔 전년대비 8만1000명, 2020년엔 5만3000명, 2021년엔 8000명 줄었습니다. 대기업 숫자가 늘었지만 일자리 창출효과가 비례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2022년엔 13만5000명이 급증했다가 2023년 다시 4만3000명이 감소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기 변동에 따라 일자리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은 고통분담이 없는 셈입니다. 대기업 집단 수는 매년 후퇴없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경기가 나빠지면 일자리를 줄여 인건비부터 줄였다는 분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2023년까지 5년 합산하면 제조업(4만9000명 감소) 포함 광공업 일자리는 6만1000명 감소했습니다. 최근 2년간 대기업과 거리가 있는 숙박 및 음식업점 취업자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 이전 코로나 탓에 크게 감소했다가 기저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들 분야는 일자리가 회복됐어도 전기료와 식자재 등 원료값이 높아지고 내수 경기가 부진한 탓에 어려움이 부각됩니다. 제조업에서 은퇴한 취업자가 이들 음식점 위주 영세자영업으로 이동했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이는 소득양극화의 원인이 됩니다.
고물가에 시름…더 벌어진 소득양극화
올 2분기 기준 저소득층(1분위) 가계수지는 근로소득이 전년동분기 대비 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식료품, 비주류음료 지출은 7.2% 올라 고물가의 부담이 커 보입니다. 2분위도 근로소득이 2.1% 오른데 비해 식료품 등 지출이 8.6%나 커져 실질소득 감소로 연결됩니다. 이와 달리 최상위소득층(5분위) 근로소득은 8.3%나 올랐습니다. 이들의 식료품, 비주류음료 지출도 3.7%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보입니다. 지출이 불가피한 식료품과 달리, 1분위와 2분위는 의류·신발 지출에서 각각 3.5%, 0.1%씩 줄였습니다. 반면 5분위는 관련 지출을 12.2%나 늘렸습니다. 소득이 커진 5분위가 물가 인상에도 사치품 등 필수생계품 외 소비를 늘리는 현상입니다. 이런 양극화는 오락·문화나 교육 지출에서도 나타납니다.
국민 가처분가능소득에서 비소비지출(세금, 이자비용 등)을 뺀 흑자액은 2022년 3분기 이후 매분기 마이너스입니다. 대기업이 늘어나 낙수효과가 생기면 국민 소득과 자산도 커져야 했지만 정반대되는 흐름입니다. 달러 대비 높은 환율 정책으로 인해 수출이 도움받으면서 대기업 매출은 커졌지만, 국민은 수입품 등 고물가에 시달리는 형편입니다.
경제력 집중은 구조적으로 시장 불균형을 야기합니다. 대기업 독과점이 후발주자의 진입을 방해합니다. 기술탈취 등으로 중소 혁신벤처가 해외 이탈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은 반독점법으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왔습니다. 국내에선 공정거래법이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동일인 친족범위 축소, 내부거래 공시 완화 등 관련 규제를 풀어줬습니다. 그사이 국내 주력 수출품목들이 속속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습니다. 경제력집중을 통한 대기업집단 선단식경영이 한계를 드러내는 국면입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 경제가 혁신에 뒤처져 심각한 침체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상존합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3고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성장률도 낮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부자감세를 일관하는 정책적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터지면 대응하는 임시방편만 쓰고 있다. 물가정책만 봐도 뛰는 가격을 억누르는 단기 정책에만 치우쳐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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