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사교육 과열과 저출생 등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사업체 규모가 커져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기업의 규모화(scale-up)를 위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특히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대기업 경제력 집중 관련 정책,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 방향 등을 대표적으로 꼽았습니다.
'대규모 사업체' 가장 낮은 국가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7일 KDI 포커스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사업체 규모별로 파악할 때 우리나라는 대규모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국가"라고 밝혔습니다.
OECD의 250인 이상 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58%로 과반수가 대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47%), 영국(46%), 스웨덴(44%) 등도 한국보다 3배 이상 높았습니다.
사업체 규모에 따라 근로조건 차이도 컸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를 보면 2022년 5~9인 사업체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 절반 수준인 54%에 불과했습니다. 비교적 큰 규모인 100~299인 사업체 임금도 71%에 그쳤습니다.
임금 외 조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사례를 보면 10~29인 사업체의 경우 '출산 전후 휴가 제도가 필요한 사람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사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3%를 기록했습니다. 5~9인 사업체는 이 비율이 33.9%로 더 많았습니다.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지 못한 비율도 각각 49.2%, 52.2%였습니다.
특히 대다수 청년은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2023)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이 취업을 원하는 기업 중 중소기업은 16%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대기업은 64%, 공공 부문은 44%를 차지했습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7일 KDI 포커스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사업체 규모별로 파악할 때 우리나라는 대규모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국가"라고 밝혔다. OECD 국가의 1~249인 및 250인 이상 기업 일자리 비중. (그래픽=뉴스토마토)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은 "일각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 격차에 관해서 얘기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훨씬 더 큰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다"며 "단적으로 말해 대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사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보다 임금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일자리 부족이 부추긴 '입시경쟁'
고영선 연구위원은 "한국에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함에 따라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표 사례로는 '입시경쟁'을 지목했습니다. 고 연구위원은 "입시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입시경쟁은 줄지 않고 있다"며 "문제는 입시제도에 있지 않고 대기업 일자리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정규직 취업이나 대기업 취업, 장기근속 등에서도 유리하다는 분석입니다. 고영선 연구위원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상위 20% 대학교 졸업생은 하위 20%보다 많게는 50% 가까이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사회 화두인 '저출생 문제'도 대기업 일자리 부족과 관계있다고 지목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경력 단절 이후 재취업 시 일자리 질이 대체로 하락하는 것도 문제로 봤습니다.
고영선 연구위원은 "경력 단절 뒤 재취업할 때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는 출산을 미루고 계속 일하거나 출산하고 난 다음 재취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출산율이 낮은 문제와 여성 고용률이 낮은 문제는 상당 부분 좋은 일자리 부족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공화국' 역시 비수도권의 대기업 일자리 부족이 문제로 지목됩니다. 실제 KDI가 시도 단위 업종별 사업체 규모와 노동생산성 간이 관계에 관해 회귀분석으로 연구한 결과, 한 지역에서 대규모사업체 일자리가 1%포인트 늘면 해당 지역 근로자 한 명이 창출하는 금액이 41만원 더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고영선 연구위원은 "사업체 규모가 커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정부는 기업의 규모화가 원활히 진행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중소기업 적합 업종제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의 정책과 대기업 경제력 집중 관련 정책도 이런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사관계에서도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가능한 범위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7일 KDI 포커스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사업체 규모별로 파악할 때 우리나라는 대규모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국가"라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그래픽=뉴스토마토)
세종=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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