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격려를 위해 마련된 '당정 만찬'이 상처 뿐인 빈손 회동으로 끝났습니다. 90분간 진행한 만찬에서 의정갈등과 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 현안 논의는 없었고, 말 그대로 '밥만 먹었다'라는게 참석자들의 전언인데요. 특히 이번 만찬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이 최대치에 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을 마친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환담하며 산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친윤' 대 '친한' 대리전
25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날 오후 6시30분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만찬을 가졌습니다. 이날 만찬은 90분간 이어졌으며 윤 대통령은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환영사를 했습니다.
만찬 참석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체코 공식 방문 성과와 원전 생태계를 언급하며 대화를 주도했습니다. 대통령실의 예고대로 윤 대통령과의 한 대표의 독대도 없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한 대표가 '모두 발언'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통상적인 만찬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환영사 이후 당대표의 모두 발언이 있기 마련인데, 별도의 발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대표는 이번 만찬을 통해 의정갈등 돌파구 마련과 함께 김 여사의 사과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놓고 친윤계(친윤석열계)와 친한계(친한동훈계)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윤한 갈등'의 대리전을 펼치는 모양새입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대표는 바로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말도 못 하게 막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만약 발언을 하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한 대표 스스로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닌가 그렇게 본다"고 짚었습니다.
반면 친한계 입장은 다릅니다. 친한계인 장동혁 최고위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야외에서 식사를 했고, 테이블이 길게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어떤 무게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민심도 전달하거나 뭐 톤은 어떻게 가져갈지는 모르겠지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 어제는 그런 기회 없이 곧바로 식사를 했었기 때문에 현안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따로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대표 모두발언 기회가 주어졌다면 현안에 대해 언급할 수 있었는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종혁 최고위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자기의 참모들, 본인이 임명하신 분들의 얘기만 들을 수는 없는 거잖나. 본인에게 좀 껄끄러운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나 이런 사람들, 정치인들 얘기도 들으셔야 되잖나"라고 했습니다.
의정 갈등·김건희 사과, 윤·한 '괴리'
이번 만찬은 성사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8월30일 새 지도부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예정됐던 만찬은 한 대표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유예'를 언급하면서 추석 이후로 무기한 연기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실을 통해 만찬이 재성사됐지만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대통령실은 "독대는 별도의 협의 사항"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제안 방식에 당황스럽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독대 요청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반감입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만찬 당일 기자들과 만나 "(독대 요청 보도가) 흠집내기나 모욕주기처럼 느껴지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 대표는 만찬 직후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조속한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달라"며 다시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습니다. 한 대표는 "중요한 현안에 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필요가 여전히 있지 않겠는가"라며 "(어제 만찬은) 그런 (현안)말씀을 나눌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홍 수석은 한 대표의 요청에 즉답을 피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전히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독대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윤한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대표가 요구하는 건 의정 갈등에 대한 해법과 김 여사의 사과인데, 윤 대통령은 두 가지 모두 '불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만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표결에 대비한 당정 공조가 불가피한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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