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한 시장 상점에 채소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지난 3년간의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은 어느새 우리 생활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는데요. 가격 상승 품목이 점점 세밀화되고 그 빈도가 잦아지며 인플레이션 현상은 '뉴노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먹거리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양적완화로 지금의 고물가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기에 이상 기후 현상이 더해지며 농축수산물 가격은 널뛰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에도 서민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가중되는 판국입니다.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날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1년 전보다 26.8% 높은 8794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무 1개는 46.1% 뛴 3751원으로, 오이 1개는 28.3% 오른 약 1869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반적으로 채소는 높은 가격을 보이고 있지만 특히 가격 상승폭이 두드러지는 품목에 '금(金)' 자가 붙어 금배추·금무·금오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올해 초 '금사과 대란' 등 과일부터 하반기 채소 가격 폭등까지 '프루트(과일)·베지(채소)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가격이 치솟자 김치 가격이 비싸지는 '김치플레이션' 우려도 가시화됐습니다. 김장을 포기하고 포장김치를 사는 수요가 늘면서 식품업체가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김치는 동이 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출하량이 적은 농축수산물의 경우 가격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에 '00플레이션' 신조어는 유난히 먹거리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입니다. 지난해 설탕과 우유 가격 상승으로 연관 식품 가격이 함께 오르는 슈거·밀크플레이션을 비롯해 최근에는 국제 원두 가격 상승세로 인한 '커피플레이션' 전망이 나옵니다. 인플레이션 용어가 범람하는 시대, 그 품목은 더욱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에 생산량 줄고·비용은 증가
이 같은 인플레이션이 일상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풍부한 시중 유동성에 의한 화폐가치 하락 등 거시경제 영향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기후 변화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 이상 기후 현상이 발생하며 농작물 수확에 애를 먹고 있는데요. 작황 부진에 따른 출하량 감소로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폭염·냉해 등 이상 기후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비용 투입에 따른 가격 상승도 있습니다. 축산물과 수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지비용 증가와 더불어 환경 변화에 따른 폐사율 증가 등으로 공급량이 줄어드는 까닭입니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선임연구원은 "올해 국내 채소 가격 상승은 폭염 영향이 크다"면서 "농작물이 잘 자라는 적정 온도를 벗어나는 기간이 평년보다 길어지면서 작황 부진이 나타났고,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의 출하량이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온이 올라가면 냉방시설을 돌려야 해 에너지 비용이 많이 나온다. 장기간 폭염이 지속되면 작업량은 감소해 인건비 또한 늘어난다"라며 "기후 변화로 파생된 복합적인 요소로 비용 투입이 늘었고, 그 비용 또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 기후에 따른 먹거리 가격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이 연구원은 "그해 기후와 작황, 재배면적에 따라 품목별 등락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채소·과일류 등 먹거리 물가가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물가 인상 배경 중 하나인 이상 기후 현상이 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배추 가격이 연일 오르는 가운데 대구의 한 식당에 '배추값 급등 남기지 마세요 제발'이라는 글귀가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물가 내린 것 맞나"…서민 곡소리
먹거리 물가 폭등은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됩니다. 주거나 자동차 등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금액 자체는 적은 편이지만 먹거리는 매일 소비해야 하는 요소다 보니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큰 편입니다.
최근 물가 상승률 둔화에도 소비자들에게 식품 가격은 여전히 비싸게만 느껴지는데요. 실제 식품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기도 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전년 동기 대비)로, 2021년 3월 1.9%를 기록한 후 3년 6개월 만에 1%대에 진입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선식품지수는 136.25(2020년=100)로 집계돼 1년 전보다 3.4% 높았으며, 생활물가지수(117.45, 1.5%↑) 가운데 식품은 124.06으로 2.6%의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식탁 물가 안정화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한 중동 리스크에 국제 유가는 들썩거리고 있고, 기후 열대화로 농작물 공급 안정화가 깨지면서 인플레이션이 굳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은 빈부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서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먹거리는 생존하고 관련이 있고 구매 또한 빈번하게 일어난다. 서민 생활에 먹거리 가격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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