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미국의 피벗과 함께 반지하 신세를 청산할 것으로 예상됐던 리츠(REITs)가 오히려 지하실에 처박히는 모양새입니다.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반등하며 이자부담이 다시 커진 데다 대규모 유상증자까지 이어지며 투자심리가 위축된 탓입니다. 운용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마저 훼손돼 당분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리츠들의 주가는 최근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냈습니다. 상장리츠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SK리츠는 10월에만 7.28% 하락했으며 조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ESR켄달스퀘어리츠도 소폭 하락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나마 이들은 사정이 낫습니다. 다른 리츠 중엔 낙폭이 18%를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금리 하락 기대감에 한창 기세를 올리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연중 고점 대비 낙폭은 더 큽니다.<표 참조>
금리 재상승…대출이자 증가 부담
증시에 상장된 투자종목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평가받는 리츠들의 주가가 이처럼 약세를 보이는 것은 금리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리츠는 금리 변화에 취약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피스, 상가, 숙박시설, 물류센터 등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이 자체 조달한 자금을 초과하는 규모의 대출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시중금리가 오르면 리츠가 조달하는 대출의 이자비용이 증가해 리츠의 재무구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배당의 주요 재원인 임대료 수입은 고정적인데 이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배당금은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장기간 저리로 묶여 있다가 최근에 고금리 대출로 갈아탄 경우라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7월1일에 상장한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만 해도 이달 16일 자기자본의 19%에 달하는 약 122억원을 선순위 대출로 조달하면서 조건을 확정해 공시했는데, 대출금리가 무려 8.5%에 달해 투자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리츠는 6월에 공모를 진행할 당시 연환산 8.5%를 확정배당한다는 사실을 내세워 120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8.5%를 배당하는 리츠가 8.5%로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재무적으로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단기 대출임을 명시했으나 언제 얼마나 금리를 낮춰 자금을 재조달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의 주가는 리츠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7월1일 공모가 3000원으로 상장해 이날 2195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리츠들이 리파이낸싱을 하면서 연 5% 안팎의 대출금리를 안내했습니다. 2~3%대 이자를 내던 시절과는 달라진 현실에 많든 적든 배당금 감소는 피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리츠 투자자들은 누구보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올해 시중금리가 먼저 하락하면서 기대감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빅컷을 단행한지 얼마 안 돼 시중금리가 다시 치솟으면서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금리 상승의 배경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어서 당분간 고금리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리 하락에 따른 수혜는 당분간 접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표=뉴스토마토)
대규모 유증…하필이면 지금
금리의 반전이 리츠가 약세 전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면, 연이은 대규모 유상증자는 투심을 차갑게 식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증시에선 지난 6월부터 리츠들의 대규모 유증 계획이 속속 발표됐습니다. 삼성FN리츠가 먼저 유증을 진행해 1375만주의 신주가 상장됐습니다. 이달엔 이지스레지던스리츠와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가 유증으로 대량의 신주를 발행했습니다. 이날 29일은 신한알파리츠의 유증 청약 마감일입니다.
그 뒤를 이어 롯데리츠, 한화리츠도 각각 1639억원, 4730억원을 조달하기 위한 유증 청약 일정을 잡았습니다. 디앤디플랫폼리츠 역시 연내 유증 계획을 밝힌 상태입니다.
이들이 유증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목적은 주로 신규 자산 투자를 위해서입니다. 삼성FN리츠는 삼성화재 판교 사옥을, 신한알파리츠는 씨티스퀘어빌딩을 편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롯데리츠는 L7강남호텔, 한화리츠는 한화그룹이 본사로 쓰고 있는 장교빌딩, 디앤디리츠는 명동N빌딩 투자를 유증 목적으로 내걸었습니다.
문제는 주식시장이 약세인 가운데, 금리 상승으로 분위기도 스산한데 유증으로 대량의 주식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지스레지던스리츠의 경우 유증 자금으로 대출을 상환할 경우 곧바로 비용 절감 효과로 나타나지만, 신규 자산 투자는 주당순이익(EPS)과 배당금을 늘려주는 효과가 크지 않아 반기는 투자자들이 적습니다.
게다가 신규 자산이 리츠 운용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의 의심을 사기도 합니다. 운용사가 운용하던 기존의 사모펀드가 보유한 건물을 매입해 사모 투자자들의 엑시트를 돕는다거나, 운용사의 모기업 자산을 고가에 매입한다는 비판 등이 제기됩니다. 물론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리츠 투자자들의 신뢰는 그만큼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병윤 한국리츠협회장은 지난 24일 열린 상장리츠 투자간담회에서 “국내 리츠시장이 내년에 15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과 리츠의 투자성과는 별개이다 보니 투자자들로서는 리츠 시장이 팽창하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한편, 리츠 주가가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예상 배당수익률은 높아졌으나 이것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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