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하자 발생 건수가 증가하면서 준공 후 실물을 확인하고 계약할 수 있는 후분양제를 늘리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최근 부실시공 이슈도 늘고 분양자들도 후분양 선호도가 올라가면서 과거보다 후분양제를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후분양제 도입이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하자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후분양제는 사업시행자가 필연적으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한계도 존재하기에 선분양과 후분양 제도를 적절히 혼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게 우선이라고 조언합니다.
매년 아파트 하자 분쟁 신청 늘어…올해 말 4600여건 예상
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5일 하자분쟁조정위원회(하심위)에 신청된 하자처리현황과 건설사별 하자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국토부는 2019년부터 연평균 4400여건의 하자 분쟁사건을 처리했으며, 올해는 1월부터 8월까지 3525건의 하자를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예년 보다 약 20% 더 많은 분쟁사건을 처리한 것입니다.
하심위에 접수된 하자 분쟁 신청 건수는 2022년부터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3027건, 2023년에는 3313건을 기록했는데요. 올해는 8월까지 접수된 건수가 총 3119건입니다. 하심위는 이를 바탕으로 온 연말 총 신청 건수가 4679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올해에도 전국 각지에서 아파트 하자 관련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대구 북구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 아파트'도 공사 하자 문제로 진통을 겪다가 지난 4월에 가까스로 준공 승인이 났습니다.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 100여명은 2월 말부터 천장 누수, 바닥 수평 틀어짐, 세대 내부 콘크리트 균열 등 하자를 시정할 것을 건설사 측에 줄기차게 요구했는데요. 대구시와 북구청이 강력한 행정 조치를 예고하며 압박하자 건설사는 3개월 가량 보수 공사에 매달려 가까스로 준공 승인을 받은 겁니다.
전북 익산시에서는 제일건설이 시공한 아파트가 입주 석 달째인 지난 6월 말부터 빗물이 지하 주차장으로 새어 들어와 성인 발목 높이까지 차오르는 등 누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6월 말 입주를 시작한 전남 광양시의 '광양 포스코 더샵' 아파트에서도 누수와 마감처리 미숙 등 하자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사진=뉴스토마토)
'집값 하락 우려' 과거와 달라…실물 확인 가능한 '후분양제' 도입 필요
기존에는 분양한 아파트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입주민들이 법적 분쟁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완성된 아파트 품질 확인이 선분양제에 비해 용이한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후분양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주택시장 과열에 따른 시장 안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을 검토한 이후, 정권 교체에 따라 추진과 중단이 반복됐습니다. 이후 2018년 문재인 정권 당시 후분양제 활성화 대책이 추진됐으며, 오세훈 서울시장 부임 이후 SH(서울주택도시공사) 공정률 90% 시점 후분양제가 시행되는 등 점차 그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후분양제는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완공된 주택을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힙니다. 때문에 허위과장광고나 입주 지연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 부실시공을 사전에 예방이 용이한 편입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파트 시공 시 화장실, 욕실, 주방, 베란다 등에서 하자가 많이 발생한다"며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이런 곳에서 발생하는 눈에 보이는 하자를 기본적으로 잘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금 압박' 후분양제 단점 존재…일본처럼 선·후분양 혼용도 필요
소비자들도 후분양제 비중을 늘려 시공 시 하자를 줄이고 주택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분양제 도입이 반드시 아파트 부실시공과 하자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LH공사가 공급한 아파트들에서 발생한 하자는 창호와 가구, 도배와 잡공사의 순으로 발생빈도가 많았다. 이런 부분의 정상 시공 여부를 80%의 공정수준에서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그 밖에 단열시공의 하자나 층간소음, 드물게는 건축물 자체의 중대한 결함 등도 실제 구매고객이 현장을 보더라도 쉽게 알만한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건설사 입장에서도 후분양제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자금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어 사업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단기간에 건설자금을 마련해야하는데 이는 기업 입장에서 큰 압박"이라며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후분양을 확대하는 것은 중소형 건설사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권대중 교수는 "선분양제는 건설사뿐 아니라 수분양자도 자금 마련이 용이한 측면이 있어 마냥 단점만 있는 제도는 아니다"라며 "다만 후분양제에 비해 시공 시 하자 발생 및 추후 발견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일본처럼 선분양과 후분양을 적절히 혼용하면서 건설사들이 하자 발생을 줄일 수 있도록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교육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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