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신협중앙회가 임원이 퇴직한 후 같은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재선임될 경우 명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내부 규정을 변경했습니다. 금융감독원 권고가 있고 4년이 지나서야 관련 규정을 손질한 것인데요. 다만 법 개정 이전 행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할 수 없어 그간 지급한 중복 명퇴금은 환수할 수 없습니다.
국회서 뭇매맞자 뒤늦게 손질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협중앙회가 조합 직원 퇴직 후 동일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는 경우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표준업무방법서 의무규정은 중앙회 이사회에서 채택한 안건을 지역 조합이 반드시 원안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번 개정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지적에 따른 조치입니다. 당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퇴직 후에 동일 조합 상임이사 선임은 사실상 근로계약 연장이기 때문에 명퇴금 지급을 중지하라는 금감원 권고가 있었다"며 "이후 신협이 조항을 개선했는데 임의조항으로 규정하면서 지역조합 611곳 중 177곳은 그대로 임의규정인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원실 전수조사 결과 5년간 총 56명에게 110억원의 명퇴금이 지급됐다"며 "이게 모두 신협조합원 돈인데 2020년부터 신협은 뭘 한 건지 모르겠다"고 질타했습니다. 당시 국감 증인으로 참석한 우욱현 신협중앙회 관리이사는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조합이 (중복 명퇴금 부지급) 규정을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020년 신협중앙회 종합감사에서 조합 직원이 퇴직 후 동일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는 경우 명퇴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관련 규정 개선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명예퇴직은 정년 전에 종료된 근로계약의 잔여기간을 보상하는 제도입니다. 금감원은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면 사실상 근로계약이 연장된 것인데, 명퇴금을 지급하는 건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이후 신협중앙회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관련 규정을 개정했지만, 상당수 지역 신협은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신협중앙회가 개정된 관련 규정을 의무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신협중앙회의 표준업무방법서 등이 담긴 표준규정은 크게 의무규정과 임의규정으로 나뉩니다. 의무규정은 중앙회 이사회에서 채택한 안건을 지역 조합이 반드시 원안대로 따라야 합니다. 반면 임의규정은 조합 사정에 맞게 보충·변경해 채택할 수 있습니다. 각 조합 이사회 승인만 받으면 얼마든지 규정을 손볼 수 있는데요. 금융당국이나 중앙회 권고가 있더라도 지역 조합 이사회 입맛대로 규정을 수정하거나 채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욱현 신협중앙회 관리이사가 지난 10월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복 명퇴금 부지급' 강제화'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기지급 110억원 환수 불가
이번 표준업무방법서 개정으로 중복 명퇴금 부지급이 의무 규정에 포함되긴 했으나 기존에 지급된 건에 대해 소급 적용되진 않습니다. 5년간 중복 지급된 110억원의 명퇴금을 환수할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간 허술한 규정 체계를 악용한 사례가 많았는데요. 서울 동작구 소재의 한 신협에 재직 중인 A 임원은 수억 원대의 추가 퇴직금을 청구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3월 신협 전무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4월부터 동일 신협의 상임이사로 출근하면서 추가로 명퇴금을 받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해당 신협의 명퇴금 규정은 금감원 권고대로 개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부산 소재의 한 신협도 명퇴 후 상임이사로 임명된 B씨에게 지난해 명퇴금 3억3000만원을 지급했습니다. 부산의 또 다른 신협은 지난 1월 당국 권고에 맞춰 규정을 바꿔놓고도 명퇴금 20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만 광주문화신협 4억9000만원, 안산중앙신협 3억9000만원 등 12명에게 약 20억원의 명퇴금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협은 신용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상호금융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을 표방하는 비영리 법인입니다. 신협의 각 지역 단위조합은 조합원이 낸 출자금을 자본금으로 운영되는데 지난해 기준 전국 조합원 수가 676만명으로 1인당 평균 출자금은 약 97만원입니다. 중복 명퇴금 지급이 질타를 받은 이유입니다.
신협중앙회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 경에 퇴직금 중복 지급을 막을 수 있도록 규정을 손봤다"며 "소급 적용은 안 되지만 향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협중앙회가 조합 직원 퇴직 후 동일 조합의 상임임원으로 선임되는 경우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표준업무방법서에 반영했다. 다만 이미 지급된 건에 대해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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