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
윤석열 대통령이 한밤중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 중 하나로 내건 말입니다. 전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6시간의 계엄 사태는 다행히 막을 내렸지만, 그러기엔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막대합니다.
2024년 12월 3일은 군 통수권자의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 앞에 군용차량이 등장하고, 상공엔 헬기가 뜨는 모습을 목도하는 처참한 역사의 날이 됐습니다.
재계는 "가뜩이나 어려운데"라면서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정치가 상위 구조인 탓에 기업하는 경제인들은 대놓고 항의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4대 기업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하는 입장에선 '불확실성'을 가장 꺼려한다"며 "앞으로 탄핵 정국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텐데,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안감이 더 크다. 정치 리스크가 경제에 이렇게 악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방에서 분투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2.0 출범을 앞두고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에 대응할 방안 마련에 주력하던 차였습니다. 그러기엔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 10곳 중 7곳은 내년도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등 불확실성과의 기나긴 사투를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한 재계에 계엄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끼어들면서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게 된 시계제로 상태에 놓였습니다.
로이터통신은 계엄 사태에 따른 혼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강화할 명분을 줬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북 대치 상황이 꼽혔다면, 이제 계엄 사태가 경제의 부정적 요인으로 추가된 겁니다.
계엄 사태가 6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탄핵 국면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는 정치·사회·경제적 혼란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이 시간 동안 기업과 산업계는 불확실성이라는 가파른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제민 연구원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더불어 경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게 됐다"고 했고,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현 정권의 리더십과 정권 유지 여부에 대해 빨간불이 켜진 상황으로, 정책 추진 주체이자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정치 불안이 경제를 뒤흔드는 후진적 행태가 한국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 중지를 모아야 할 대통령 한 사람의 폭거가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패악질' '만국의 원흉' '범죄자 집단의 소굴' 등 무시무시한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당장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됐습니다. 대한민국과 산업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재계의 비상계엄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입이 있겠나. 기업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최선"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국회를 괴물로 표현했던 대통령이 벌인 정치적 자해가 도리어 우리 기업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명하고 사과하셔야 합니다. 정치적 폭거에 기업들은 버틸 힘이 없습니다.
임유진 재계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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