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에 찾은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사진=김성은 기자)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계엄령 사태 이후 며칠 동안 명동에 사람이 많이 줄었어요."
명동 골목길 모퉁이에서 모자를 파는 한 상인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지난 6일 오후 12시부터 3시간 동안 누빈 명동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러 펴졌지만, 연말의 설레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강추위만 느껴졌습니다.
이달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7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까지 정치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요. 내수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연말 대목 장사에 승부를 건 유통기업과 주요 상권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한국 정세에 대한 불안감 확대로 외국인 여행객 감소와 그에 따른 국내 상권 위축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큰 피해는 없지만 명동 상인들은 향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직접 구운 빵을 판매하는 상점 주인은 "그나마 오후보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행"이라면서도 "빨리 탄핵 정국이 마무리돼야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명동 필수코스 '올·무·다' 가보니
명동은 다양한 먹거리를 늘어놓은 노점상을 비롯해 각종 뷰티·패션 브랜드들이 총집합한 곳입니다. 해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 중 무조건 방문하는 필수코스이기도 하죠. 특히 패션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와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 화장품 전문점 'CJ올리브영'은 쇼핑 성지로 여겨집니다.
이날 찾은 3층 규모의 무신사 매장에는 층마다 3~5명의 손님이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관광객 손님은 여성 의류를 진열한 3층에 한 팀이 전부였습니다.
다이소 매장에 들어서자 계산대는 한가로웠습니다. 셀프 계산대에 늘어선 줄은 없었고, 직원이 상주하는 계산대에 몇 명이 계산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제품을 진열하고 있는 다이소 직원은 "보통 때는 지금보다 외국인 손님이 훨씬 더 많다"면서 "오늘은 손님이 많이 없어 계산대가 여유로운 편"이라고 했습니다.
(왼쪽)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점 1층과 (오른쪽)다이소 명동본점 화장품 코너 모습. (사진=김성은 기자)
화장품 로드 숍이 늘어선 거리에선 직원들이 전단지를 들고 판촉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매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화장품 매장 중에서는 그나마 올리브영에 사람이 북적였습니다. 명동에서 가장 큰 글로벌 특화 매장인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은 지난해 기준 하루 외국인 구매 손님만 3000명에 달하는 곳입니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사람이 몰렸지만 평상시 수준에는 못 미쳤습니다. 올리브영 매장 직원은 "명동 자체에 사람이 없는 편"이라고 평했습니다.
다만 본사에 확인한 결과 아직 이렇다 할 피해는 없었습니다. 명동에 매장을 둔 한 유통사 관계자는 "한국에 체류 중인 관광객들이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간다거나 소비를 줄이는 움직임이 보이진 않는다"며 "이번주까지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정치권 혼란은 경제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인 만큼 모든 기업들이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방안 등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관광객 줄어들까 '노심초사'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있는 12월은 겨울 휴가철과 맞물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시기입니다. 이 같은 대목에 터진 계엄 및 탄핵 사태는 한국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안을 두고 여야 충돌이 이어지고, 이에 분개한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국내 정치·사회적 혼란은 어느 때보다 높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10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373만7690명입니다. 지난해 동기간(888만50명) 대비 54.7% 증가했습니다. 국적별 방한 관광객 수는 △중국(399만8646명, 29.1%) △일본(263만2335명, 19.2%) △대만(123만5707명, 9%) △미국(111만5237명, 8.1%) 순으로 많았습니다.
같은 기간 관광수입은 138억2860만 달러로, 전년 동기(125억8550만 달러)보다 약 10% 늘었습니다. 관광수입 자체는 증가했지만 관광객 수 증가폭에 비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6일 오후 명동을 방문한 관광객·시민들이 한산한 명동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김성은 기자)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관광객 증가에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업계가 많은 가운데 정치적 리스크가 강력한 냉각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실제 영국은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했고, 미국을 비롯해 동남아 일부 국가들도 한국 여행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장기 여행 중인 대만 국적의 제니 왕(Jenny Wang) 씨는 "본국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같이 여행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도 긴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국내 안전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며 "아직 개인 관광객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줄어들 수 있어 문제"라고 현 상황을 전했습니다.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와중에 해외 관광객 감소가 가시화되면 경제 타격이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인들 입장에서 계엄과 탄핵이라는 상황이 주는 심리적 충격을 무시할 수 없다"며 "어떤 정치적인 과정이 성숙하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이어 "여러 유통기업들이 연말 분위기는 조성하고 있다만,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지쳐 있는 데다 정치 리스크가 더해져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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