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정유사 생존기로)②탄소중립 선언했지만…친환경사업 '한계 봉착'
정유업계, 탈탄소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 등 노력 강화
무상 할당 비율 높아 자발적 감축 어려운 상황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 인센티브가 탈탄소 전환의 핵심
2024-12-20 06:00:00 2024-12-20 06:00:00
이 기사는 2024년 12월 18일 15:4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정유업계가 대통령 탄핵 국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등 다양한 대내외 변수 속에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특히 급격한 유가 변동과 정제마진 축소, 고환율 등으로 인해 불안정성이 심화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구조조정 압박까지 겪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정유업계가 직면한 현안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위기를 극복할 혁신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또,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탈탄소 움직임에 우리 정유업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넷제로 시대를 맞이한 정유산업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 발표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 도입에 따라 환경 규제 강화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SK이노베이션(096770), 에쓰오일(S-Oil(010950)),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새롭고 친환경적인 수익 모델을 찾고 있으며 일부는 실증,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업황이 악화돼 정유업계의 재무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친환경 사업에 투자를 지속하거나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그 해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유 4사, 지속가능에너지 전환 전략 '진행형'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는 탈탄소 사업으로 지속가능항공유(SAF), 탄소포집 및 활용·저장(CCUS) 기술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근 떠오르는 친환경 에너지인 SAF 관련 정유사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은 2026년 SAF 생산을 목표로 대규모 시설을 구축하고 있으며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중 최초로 국제지속가능성탄소인증(ISCC EU)을 획득했다. 또 바이오디젤 함유량 30%의 바이오선박유를 공급하며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초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국내외 선사에 공급하며 바이오 연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폐기물 기반 바이오 연료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다양한 친환경 사업은 정유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국내 정유사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이 최근 발표한 '멈춰선 탄소중립: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길 잃은 약속'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정유산업의 배출량은 1620만톤(CO2e)으로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기업별로는 에쓰오일이 약 950만톤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으며, GS칼텍스가 850만톤으로 그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국내 주요 정유사들의 탄소배출량이 높은 이유를 무상 할당된 탄소배출권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상으로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양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어 기업들의 자발적인 감축 노력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경우 무상 할당량이 실제 배출량을 초과해 각각 101%와 111%를 기록했으며,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90% 이상의 무상 할당 비율을 보였다. 이에 따라 배출권 거래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유상 할당 비율 확대와 같은 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탈탄소 위해서는 정부 역할도 매우 중요"
 
전문가들은 정유사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전환, 온실가스 직접 및 간접 배출량 공시, 전과정 평가(LCA) 기반 관리 전략 등 투명한 경영 방침과 혁신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유업계가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과 인센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유럽에서는 정유업계와 정부 간 협력을 통해 탈탄소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에너지기업 BP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자국 정부와 협력해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및 청정수소 생산 프로젝트인 ‘넷제로 티사이드(Net Zero Teesside)’를 추진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연간 1000만톤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영국 정부의 보조금과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토탈에너지스도 SAF 생산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EU의 재생에너지 지침(RED II)에 따라 다양한 정부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 특히 SAF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셰브론은 바이오연료 생산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미국 농무부(USDA)와 에너지부(DOE)의 보조금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바이오디젤과 SAF 생산량을 늘리며, 친환경 연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탈탄소 정책과 재정적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CUS 등 신기술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이 미국이나 EU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직·간접적 보조금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 확대 없이는 국내 정유사의 탈탄소 전환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유가하락과 정제마진 축소,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탄핵 국면 등 수많은 대내외 리스크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친환경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R&D나 투자 등에 대한 정부 지원 없이는 탈탄소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빠른 시일 내에 확보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계가 친환경 사업을 적극적으로 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기업들이 친환경에너지로 전환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전부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또한 예산이 부족해 지원을 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에너지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변하기까지는 결국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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