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라는 투자회사가 인천의 한 항만부지에 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며 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대출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금융사들이 빌려준 돈은 1200억원대에 달합니다. 해당 항만부지는 HJ중공업 소유로, 토지계획상 일반공업지역에 해당돼 데이터센터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흥미로운 건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와 HJ중공업이 한국토지신탁(한토신)과 관련됐다는 점입니다. 우선 HJ중공업은 한토신 지배를 받습니다. 한토신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부건설을 인수했는데, 동부건설의 자회사가 HJ중공업입니다.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한토신이 투자한 회사인데, 한토신과 같은 건물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부당 대출의 몸통은 한토신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항만부지에 데이터센터 짓겠다"…실제는 '용도변경 안돼'
24일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7월부터 수협은행, 농협, 신용협동조합, 중소기업은행, 다올저축은행, 한국투자증권 등 다수의 금융사들은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에 대출을 실행했습니다. 모두 1200억원대에 이릅니다.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인천시 서구 원창동 일대 항만부지(총 5만385.4㎡)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며 금융권으로부터 대규모 대출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땅엔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곳은 '일반공업지역'으로 지정, 공장 및 창고,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 판매시설 등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금융사들에게 "항만부지를 용도변경해 데이터센터를 지으려 한다"며 대출 승인을 이끌어 냈습니다.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에 대출해 준 금융사들에게 확인한 결과 "해당 땅을 소유한 HJ중공업에 문의를 했더니 '현재 용도변경이 진행 중'이라는 답을 들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취재팀이 인천시청과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에 확인한 결과, 해당 부지에는 용도변경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현재 토지계획상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없다"며 "해당 부지와 관련해 용도변경을 추진하는 건 없고, 용도변경을 위한 사전 논의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줄잇는 의문, 자산 50억원대의 '선매입약정'…주체는 '한토신'
취재팀이 국토부 자료를 확인한 결과, 해당 항만부지 공시지가는 올해 1월 기준 557억8662만7600원입니다. 시가는 그보다 2~3배 정도 더 높은 1400억원대로 알려졌습니다. 데이터센터가 준공된다면, 땅 가격은 이보다 더 크게 뛸 게 자명합니다. 땅값이 대략 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돕니다.
반면 데이터센터가 준공되지 않을 경우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에 여신을 제공한 금융사들은 대형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수협은행 208억원, 신협 143원억원, 다올저축은행 120억원, 농협 104억원 등 총 1200억원가량의 대출이 진행됐습니다. 금융사들은 "대출을 할 때 집합투자업자인 멜론자산운용이 '선매입약정'을 해주기로 했다"며 "데이터센터가 준공되지 않으면 멜론자산운용이 돈을 보전해 줄 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항만부지에 데이터센터를 못 지을 경우 멜론자산운용이 항만부지를 매입, 대출을 보전해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보험'인 셈입니다.
차정훈 한국토지신탁 회장. (사진=한국토지신탁)
문제는 여기서 등장하는 멜론자산운용은 2015년 설립, 자산이 50억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멜론자산운용이 선매입약정을 해줬다고 해도, 원창동 항만부지 시세나 대출 규모를 고려할 때 대출금을 바로 상환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에 대출을 실행한 한 금융사는 취재팀에게 한 가지 귀띔을 했습니다. 그는 "선매입약정은 멜론자산운용이 했지만, 그 주체는 한토신"이라며 "한토신에서 (선)매입약정을 했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손실을 보는 구조가 아닌 걸로 안다"라고 말한 겁니다.
실제로 HJ중공업과 한토신,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묘한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우선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가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며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원창동 항만부지의 소유주는 HJ중공업입니다. HJ중공업은 과거 한진중공업이었으나 한토신이 지배하게 된 후엔 사명을 지금의 HJ중공업으로 변경했습니다. 아울러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한토신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토신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코레이트타워 16층~19층을 사용하는데,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는 이 건물 18층을 쓰고 있습니다. HJ중공업은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에 일정 금액의 투자도 진행한 상태입니다.
원창동 항만땅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과 이를 통한 대출에도 한토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의혹이 뒤따릅니다. 투자업계에선 '선매입약정 주체는 한토신'이라는 말을 고려할 때, 한토신이 멜론자산운용의 선매입약정 신뢰성을 보완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보증을 섰을 수 있다는 의문도 제기했습니다.
한국토지신탁 본사가 위치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코레이트건물 외관. (사진=한국토지신탁)
투자업계 "사기·배임죄 해당…자본시장법·공정거래법 위반"
투자업계 관계자는 "해당 항만부지는 용도변경이 안 되고, 데이터센터를 못 짓는 땅"이라며 "용도변경도 안 되는 땅이 용도변경이 된다고 하고 수천억원을 대출받는 것부터가 의심스럽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자금난을 겪는 한토신이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사기'를 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멜론자산운용 자산 규모를 고려할 때 1400억원대 땅에 매입확약을 해주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한토신이 멜론의 신뢰성을 보완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보증을 섰다면 형법상 사기죄, 업무상 배임죄, 금융실명법과 자본시장법 위반, 공정거래법 위반, 공문서위조 및 행사죄 등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한토신과 HJ중공업에 이 같은 의혹에 대한 반론 및 해명을 요청했습니다.
HJ중공업 관계자는 "'용도변경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실무 절차를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용도변경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용도 추가, 조성계획 변경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런 걸 다 검토하다 보니까 시간이 걸리고 있다"면서 "용도변경을 위한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또 "인천시청 실무자 쪽과도 진행을 하지만 거기서는 구체적인 서류 접수가 안 되니까 '진행이 안 되고 있다'라고 할 수 있으나, 저희 내부적으로는 여러 창구를 통해 협의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토신 관계자는 "북항아이씨피에프브이주식회사가 한토신과 같은 건물에 있지만, 관련성 있는 회사라거나 같은 회사가 아니다"라며 관계성을 부인한 뒤 "한토신은 주식투자를 하듯 투자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멜론자산운용과 한토신의 관계에 대해선 "한토신은 멜론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블라인드펀드(투자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먼저 모으고 이후 투자처를 찾아 투자하는 방식)에 투자했을 뿐"이라며 "이는 보증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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