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김태은 인턴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 멈춰 섰던 상법 개정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탄핵 정국에서 국회에서 주도권을 쥔 야당이 상법 개정 추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요.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을 내년 초까지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는 계획입니다.
반면 정부·여당은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국 불안으로 기업들의 대내외 리스크가 커진 만큼, 상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의 당위성이 더 커졌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다만 조기 대선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야당의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할 것으로 내다보는 시선이 지배적인데요. 이럴 경우 기존 재벌 지배구조 체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입니다.
다시 움직이는 '상법 개정' 시계…야, '속도 조절'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오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거쳐 내년 초까지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입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19일 이정문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는데요. 당초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처리시한을 연내로 잡으며, 지난 4일 상법 개정안 정책 토론회, 16일 상법 개정안 공청회를 각각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토론회와 공청회를 각각 한 차례씩 연기함은 물론, 연내 처리 목표 역시 선회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 처리를 무리하게 밀어부칠 경우 이 대표의 중도·외연 확장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법 개정을 둘러싸고 재계의 반발이 거세면서 급하게 법안을 처리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계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유연함을 돋보이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주주에 대한 이사 의무를 강화하는 데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법 제382조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 '이사는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이 외에 △전자주주총회 도입 △'사외이사' 명칭 '독립이사'로 변경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예외 조항 삭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거센 재계 반발에도…야, '주주 이익 보호' 압박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의 수정 여부입니다. 민주당은 해당 조항의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동안 일부 기업이 최대 주주나 오너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피해를 외면하는 물적분할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재계에서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배임죄 형사고발 같은 소송을 남발하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합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논란이 되는 대목입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조항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대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대주주의 견제로부터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핵심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3% 룰'입니다. 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임 단계부터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된 감사위원 2명 이상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재계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투기자본의 경영 간섭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합니다. 대주주가 아닌 투기자본이 일명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경영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역시 논란의 요소입니다. 집중투표제란 여러 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에게 주어진 의결권을 모두 합쳐 한 사람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현재 상법에 따르면 '1주 1의결권'에 따라 1주당 의결권 1개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예컨대 이사 3명을 선출할 때 1주를 보유한 주주는 3표 행사가 가능해져 특정 1명에게 몰표를 줄 수 있습니다. 소수 주주가 추천한 이사의 선출 가능성을 높일수 있습니다. 재계는 개정안의 의도와 달리 헤지펀드들이 단기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재계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여당이 제시한 카드는 '자본시장법 개정'입니다. 앞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명문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액주주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상장사에 한정해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핀셋 규제'를 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상법 개정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정책 토론회를 열고 직접 좌장을 맡으며 "과실을 주주들도 함께 나누고, 국민이 자산 증식 기회를 가지게 되면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쉽게 하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도 도움될 것"이라며 "이 문제(상법)는 빨리 고치는 게 기업에도, 경제계, 투자자들에게도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매우 어려운 주제지만 적정한 합의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며 "결국 어느 방향이든 결정을 하고 책임져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의견들을 잘 들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김태은 인턴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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