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3일(현지시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인터콘티넨탈 뉴욕 바클레이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2·3 내란 사태' 이전에 한국 외교·안보가 당면한 최대 도전 이슈는 '돌아온 트럼프'였다. 상·하원은 물론이고 연방대법원까지 손에 쥔 그는 오는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식을 한다.
대통령 당선 결과가 나온 지 2주도 안 돼 백악관 요직과 내각 인사를 마무리한 그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관세 10∼20%, 특히 중국 수입품에는 60% 이상 관세를 물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이행할 태세이고, 노트르담 대성당 개관식에 현직 대통령인 것 마냥 참석했으며, 캐나다와 덴마크(그린란드), 파나마(운하)에 대한 영토 욕심을 드러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의사도 강조했다. 딱 독불장군이 좌충우돌하는 모양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는 없겠으나, 아무리 '협상용 선빵'이라 해도 그 충격이 작을 리 없다.
미·중 전략 경쟁에 딱 끼어 있는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기 어렵다. 하필이면 2017년 그가 처음 대통령에 취임할 때도, 그리고 이번에도 한국은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다. '12·3 내란 사태'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어느 정도라도 정리하고 나면, 다시 트럼프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 후 첫 기자회견…"한국 언급 없었다"
지난달 16일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 대해 "취임식 전이라도 조만간 만나고 싶다"고 했고, 긴급현안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언급했다.
험악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시진핑(중국 국가주석)과 나는 매우 높은 수준에서 토론해 왔고 편지를 통해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며 "중국과 미국이 함께라면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고,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도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그와 잘 지낸다"고 했으나, 한국에 대해서는 언론 질문도 트럼프의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내란 사태 이전인데도 그랬다. 트럼프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예고는 차고 넘치는데, 정작 한국은 트럼프 언급에서 제외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 언론은 트럼프 진영 실세들과 한국의 아무개가 인연이 있다, 심지어는 큰아들 트럼프 주니어, 둘째 며느리 라라 트럼프와 누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도배했다.
그런데 정작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진영을 상대한 문재인정부 인사들은 빼놨다.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이 트럼프와 아홉 번 정상회담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에 낸 회고록 등에서 트럼프에 대해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내게는 동맹외교의 파트너로서 아주 잘 맞는 편이었다"면서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았다. 웃는 얼굴을 하지만 행동은 달라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상대하기 힘들다"고 호평했다.
트럼프가 한 번에 다섯 배를 올려달라고 해서 논란이 컸던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요구는 해도 제가 오랫동안 안 된다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전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어서 방위비 올려달라고 요구하듯이 '당신도 선거로 들어온 사람이니 그게 당연한 거다'는 식의 주장 차이를 당연하게 여겨주었다"며 "그걸 다른 문제와 섞지 않았다. 보복을 한다든가 다른 문제의 교섭을 어렵게 한다든가 이런 게 전혀 없이 사안별로 분명히 구분하는 게 전 상당히 좋았다"는 것이었다.
입이 험하기로 유명한 트럼프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해 혹평하지는 않았다. 2022년 4월 인터뷰에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내가 연임에 성공했다면 한국은) 연간 50억달러를 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해 그는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라면서도 지난해 9월 출간한 책에서는 "한국이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 매우 중요했지만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 한국과 좋은 관계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5년 전 기간에 외교·안보 분야를 주도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후 외교부 장관)과 서훈 전 국정원장(이후 안보실장)은 2018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을 직접 중개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뒤 곧바로 백악관을 방문, 트럼프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하고 트럼프의 수락 의사를 확인한 뒤 트럼프의 제안으로 백악관에서 직접 이 내용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지명된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특별 부대표. (사진=뉴시스)
"트럼프 쪽 라인도 살아있고, 우리는 최대한 도울 준비 돼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지명된 트럼프 1기 대북외교 실무자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특별 부대표는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 시절 카운터 파트였다. 두 사람은 각각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인연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정부와 트럼프1기 행정부는 양 정부가 겹치는 3년 7개월간 이를 포함해 다양한 층위, 다양한 사안에서 갈등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외교를 해온 것이다. 문재인정부 인사들은 "아직은 트럼프 쪽과 라인도 살아있고, 정부가 요청하면 우리는 최대한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걸림돌이 있다. 정의용 전 실장과 서훈 전 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동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 등으로 기소돼 재판 상태인 것이 상징하듯,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라인 인사 다수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전 정권을 겨냥해 이념적으로 접근해 먼지털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제 윤석열정부가 퇴진이 확실시되고 있다. 상황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으면, 이들을 적극 활용할 만하다. 멀리서 '트럼프 라인'을 찾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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