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6월 20일 경기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그 다음날 밝혔다.(사진=뉴시스)
국회가 '12·3 내란 사건'의 피의자 윤석열 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14일에 가결하면서, 정부가 지난 2년 7개월간 추진해온 외교·안보 분야 정책들도 급격히 퇴색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현안보고에서 "대북전단 문제는 최근 정세 및 상황의 민감성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며 "대북전단 민간단체들에 대해 신중 판단을 지난 12일 이미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12일, 대북전단을 살포해온 7개 단체들에게 최근 정세 및 상황 민감성을 고려해 대북전단 살포에 신중하고 유의해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란 사태-탄핵소추안 가결' 이전까지 대북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조하던 태도와는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당장 지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 때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업무현황보고 자료에서는 "대북전단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23.9월)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며 "주요 활동단체 및 유관기관과의 소통 지속, 접경지역 간담회 추진 등 상황 관리 노력도 경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단체들에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던 겁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해서도 중요하게 제기된 문제입니다. 지난 11월 말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북전단에 대응해 북한이 보내는 오물풍선의 원점을 타격해 국지전을 유발한 뒤,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통일부의 '신중한 판단' 요청에도 아랑곳없이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룡)은 강원 고성군과 경기 파주시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이른 시일 내 진행하겠다고 17일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등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통일부 누리집에서 '8·15 통일 독트린' 배너 빼기도
통일부는 누리집에서 '8·15 통일 독트린' 배너를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 8월 15일에 윤 대통령이 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3대 통일 비전과 3대 통일 추진 전략을 선언합니다'라며 제시한 '8·15 통일 독트린' 이미지를 누리집 전면에 다른 정책 소개 배너 5개와 함께 소개해왔습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실 관계자는 "16일 오전부터 '통일 독트린' 배너만 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외교에서는 당장 대사 부임이 문제입니다. 대중국 관계 관리를 위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파견한다고 강조했던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중국 대사 부임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김 전 실장의 주중 대사 임명과 신임장 수여 관련 절차가 중단된 겁니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전후로 주중 대사 임명건이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탄핵당한 대통령이 임명한 '특임공관장'이 부임한다고 해도 중국에서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데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경우 곧바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김 전 실장이 이미 중국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사전 동의)까지 받은 단계라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김대기 주중대사' 부임 불가능할 듯
이미 지난 10월에 주인도네시아 대사로 내정된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그는 윤석열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이어 산업부 장관을 맡은 뒤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대사를 임명한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정치색이 짙어진 방 전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13번째 교역상대국(212억 달러)이고 'K-배터리' 분야 등에서도 핵심 협력 파트너로 올라선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사의 장기 공백은 한국 외교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가 최대 업적으로 주장해온 한·일 관계 '개선'이나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16일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윤 대통령 국빈 초청을 검토하고 있었다"며 "약 20년 만의 한국 대통령 국빈 방문으로 한·일 관계 강화를 보여주려 했지만, 실현되기 곤란한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사히신문>도 "한·일 관계 개선은 윤 대통령의 일방적 양보에 의한 영향이 크다"며 "정부의 대일 정책을 비판해 온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한·일 관계가 다시 냉각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정권 기반을 잃으면 동맹을 경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등판 등으로 한·미·일 관계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 동력 크게 약해져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시도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일방적 양보에 근거한 것이라는 한국 내 비판이 극심한 가운데 진행된 것이어서 애초 기반 자체가 취약한 상황이었습니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8월 사실상 한·미·일 3자 군사동맹의 시발점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발표했으나, 현재 상황은 그때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교체됐고, 미국은 동맹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한데다 한국 정부까지 탄핵 위기에 처하면서 동력이 크게 떨어진 겁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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