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관학교 폐지 검토할 때다
2025-01-13 06:00:00 2025-01-13 06:00:00
이종찬 광복회장이 새해 초에 MBC 뉴스데스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2·3 계엄 내란 사건을 개탄하면서 “병사들은 변했는데 장군들은 1960~70년대 냉전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 시키더라도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말리는 장군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이 정도면 육사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육사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냈고 올해 89세다. 국방 원로라고 할 만한 분이다.
 
이 회장은 육사 교육이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옛 일본 군대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문제점을 꼽았다. 5·16 때는 육사 8기생들이, 12·12 때는 육사 출신 하나회원들이 정변을 주도했으며 이번에도 내란에 빨려 들어간 주요 사령관들이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가 교육을 잘못해서 쿠데타를 유발했다고 인과 관계까지 주장하진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우리 장교 양성제도를 진단하고 개선책을 찾아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 제도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따로 두고 군대식으로 훈육하는 게 특징이다. 외형은 미국 제도를 본떴다. 이 제도는 병사 학력이 낮았던 과거 시대에 엘리트 장교를 양성하는 효과를 나름대로 발휘했다.
 
요즘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고 한국군 병사 학력은 세계에서 1등이다. 학력뿐이 아니다. 병사들은 민주주의 원리를 몸에 붙인 신세대다. 사관학교 생도들은 자율적인 대학 문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MZ세대 병사를 이끄는 데 필요한 민주주의 리더십을 익힐 기회가 부족하다. 이것만으로도 지금 제도는 시대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다.
 
외국 제도는 다른 무엇이 있을까? 독일에서는 연방국방대학교가 대표적인 장교 양성 기관이다. 학생들은 군사학과, 공학과, 국제관계학과, 경제학과, 인문학과 등 다양한 학과에서 3~4년 재학한다. 학부 단계에서 육해공군을 구별하지 않고, 졸업할 무렵에 각 군을 선택한다. 가령 공군 조종사가 되려는 사람은 졸업 뒤에 전문 비행학교에 가서 조종 기술을 배운다.
 
독일 연방국방대학교 졸업생 다수는 독일 연방군 장교로 임관되어 군 생활을 시작한다. 군 입대가 의무 사항은 아니다. 졸업생은 국제기구, 방위산업체, 컨설팅 회사와 같은 민간 영역으로도 취업한다.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한국 사관학교 생도들은 군인 신분이 아닌데도 중대, 대대, 연대 등 군대 조직 형태로 편제되어 엄격하게 훈육을 받는다. 교수 요원도 대부분 군인이다. 학교 조직 전체가 중장 계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군부대이다.
 
독일 연방국방대학교는 군부대가 아니라 대학이다. 기숙사에 들어간 학생도 있지만 군대 조직으로 편제되지는 않는다. 학기 중에 단기간 군부대에 가서 군사훈련은 받는다. 총장은 일반적으로 민간이 맡는다. 민간인 총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군사교육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쉽다고 봐서이다.
 
한국 사관학교 제도는 오로지 군인의 길에 초점을 둔다. 졸업자들은 장교로 근무할 때도 심지어 전역한 다음에도 사관학교 선후배, 동기 모임을 중요한 인생 네트워크로 삼는다. 여기에 장점도 있겠지만 시민사회와 동떨어진 폐쇄적인 군대 문화에 갇힐 염려가 있다.
 
독일 제도는 군사 영역과 민간 영역이 서로 넘나들도록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다. 군인도 제복을 입었을 뿐,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독일은 군이 정치에 동원되던 파시즘 시절을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지금의 장교 양성제도를 고안했다.
 
독일 제도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사관학교 폐지를 포함해, 장교 양성제도를 열린 자세로 재검토해보자.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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