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노루페인트(090350)의 수성 도료가 자동차 공업사에서 유성 도료와 혼합해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노루페인트를 중심으로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발생해오고 있다고 증언하는데요.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업계 내 소문과 유사한 정황이 실제로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노루페인트 측은 현장을 상대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어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공업사서 노루페인트 유성 사용 정황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지난 9일 수도권 인근의 자동차 도색 작업을 진행하는 공업사들 중 실제로 노루페인트의 자동차 보수용 수성용 도료에 유성 제품을 섞어서 도색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곳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도색 작업을 빠르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해당 공업사는 "유성 도료는 색에 따라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흰색이라면 유성 도료를 사용해 빨리 작업을 마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공업사는 노루페인트 도료 사용시 범퍼를 흰색으로 도색하는 작업은 아침에 맡기면 당일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CC 등 다른 페인트를 이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원하시면 해드릴 수 있지만 다른 회사들은 수성 페인트를 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유성이 남아있는 것은 노루페인트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공업사에서 이처럼 유성 도료를 섞어 쓰는 이유는 작업 편리성 때문입니다. 유성 도료가 훨씬 빨리 말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도색 작업도 간편한데요. 반면 수성을 사용하면 고객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시 초반과 달리 수성용 도료와 유성용 도료의 가격 차는 크게 줄었지만 편의성을 이유로 유성 도료를 함께 쓰는 곳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이 같은 편법에 대응하고자 일부 페인트 제조사들은 지역 영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유성 제품을 섞어 쓰는 공업사들의 리스트를 마련해 두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루페인트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입니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자동차 보수용 도료에 유성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 확약서까지 받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편법을 자행하는 대리점은 해지까지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노루페인트는 공업용 도료 공급을 원하는 대리점에 단계별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데요. 요청이 발생하면 사업자 확인 및 현장 실사를 통해 수요처를 확인하고 용도 외 사용불가 확약서를 작성합니다.
노루페인트의 수용성 자동차 보수용 도료 '워터칼라 플러스'. (사진=노루페인트)
2021년 법 시행…MOU도 맺었지만
유성 도료를 사용해 자동차 도색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부터 자동차 보수용 도료 베이스코트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함유기준을 기존 420g/L에서 200g/L으로 대폭 강화했습니다. 사실상 자동차 보수용으로 유성 도료를 사용할 수 없는 기준인 셈입니다. VOCs는 대기 중에서 질소산화물과 함께 광화학반응으로 오존 등 광화학산화제를 생성하는 유해물질인데요. VOCs를 처리하는 설비가 구비되지 않은 자동차 공업사에서 유성 도료를 사용하면 외부로 방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경부가 기준을 높여 자동차 보수용 도료의 수성화를 추진한 것입니다.
해당 기준은 유예기간을 거쳐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도료 제조사가 유성 페인트를 편법으로 유통하자 환경부는 2022년 8월에 수성 페인트로의 전환 독려 및 유성 페인트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9개 페인트 제조사와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9개사는
강남제비스코(000860),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000390)공업, 유니온화학공업, 엑솔타코팅시스템즈,
조광페인트(004910), KCC, 씨알엠, PPG코리아, 한국페인트잉크공업협동조합입니다.
하지만 지난 9일
KCC(002380),
삼화페인트(000390)공업 등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제조업체는 노루페인트가 환경부와 체결했던 '휘발성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위반했다며 공동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노루페인트가 수용성 페인트로 선보인 '워터칼라 플러스'를 일부 공업사에서는 유성 수지 및 유성희석제와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이들 업체의 주장입니다. 노루페인트가 유성 베이스코트를 편법·불법 유통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업체는 "편법·불법적인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 유통은 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교란하고 있다"며 "법이 정하는 바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페인트 제조업체와 이를 유통하는 판매대리점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법의 허점과 어려운 단속 현실을 악용하고 있는 일부 제조업체와 판매대리점이 이익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2023년 국감 앞두고 재발방지책 제시
지난 2023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 유통 문제로 당시 노루페인트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국감 출석은 피하게 됐지만 증인의 자리에 섰다면 노루페인트의 자발적 협약 불이행과 비친환경적 태도에 대한 집중포화가 예고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대수 의원실 측은 "지난해 도료업계와 환경부가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를 쓰지 않기로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으나 노루페인트는 암암리에 유성 도료를 생산하고 유통해 왔다"며 "관련 현황과 상황, 환경부 입장 등을 국감에서 전반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노루페인트 실무진 측은 국감 전 박 의원실을 찾아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 유통 사안에 대해 확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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