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시민단체, 반도체 투자 명분 금산분리 완화 '재벌 특혜 우려'
국회 토론회서 '재벌 특혜·금융 사금고화' 우려 집중 제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자본시장 직접 조달 가능"
"금산분리, 총수 지배력 남용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2025-12-08 16:48:50 2025-12-08 16:55:31
[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둘러싼 논쟁이 반도체 투자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해당 논의가 실제 투자 확대와는 무관하게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강화와 금융의 사금고화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박홍배 민주당 의원, 99%상생연대, 경제개혁연대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금산분리 완화 추진, 혁신자금 마련인가? 재벌 특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요구의 문제점을 집중 점검했습니다. 99%상생연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시민사회·노동·경제 개혁 단체들로 구성된 연대체입니다.
 
신장식 의원은 인사말에서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과 AI 고대역폭 메모리(HBM) 반도체 투자 논의가 확산되면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이유로 금산분리 완화 요구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투자 규모와 일정 모두 불확실한 상황에서 해당 제도의 변화가 일부 기업에게 특혜성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면밀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박홍배 의원은 "금산분리는 대한민국 금융 시스템을 지탱해온 가장 기본적인 안전 원칙"이라며 "금융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고, 산업 리스크가 금융으로 전이됐던 부작용과 그 피해는 결국 금융소비자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반도체 투자와 금산분리는 무관하다"며 "향후 오픈AI의 대규모 HBM 주문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며, "설사 대규모 투자가 실제로 필요하다면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는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통한 SK하이닉스 투자 구상에 대해 "CVC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은 SK(034730)의 계열 금융회사가 대신 자본을 조달하거나 계열사 자본으로 SK하이닉스에 투자하자는 의미"라며 "이는 애초 CVC 도입 취지인 사내유보금 활용과 벤처기업 투자, 인수합병 활성화와 무관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자본시장에서 조달이 가능한 투자임에도 CVC를 우회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소수주주에 대한 배임이자 주식시장 일반투자자의 기회를 약탈하는 불공정한 지원 행위"이며, "자본시장 활성화와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계열사를 통한 투자는 총수 일가의 통제 유지·강화 또는 사익 편취라는 측면을 제외하고는 의미가 없는 열등한 자본조달 방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조혜경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 소장은 "금산분리를 법으로 강제하는 이유는 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총수 일가의 지배권 남용을 동시에 차단하기 위한 이중적 기능 때문"이라며 "비금융기업이 금융회사를 지배해 고객의 자금을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 소장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보유 특례 등으로 금산분리 규제는 이미 상당 부분 완화돼왔다"며 "이 같은 규제 완화로 인해 이미 경제력 집중 억제, 사금고화·사익 편취 방지 효과는 제한적이며,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자는 주장과는 달리 재벌 기업의 금융계열사 진출의 혁신 효과는 미지수"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노종화 변호사는 '지주회사 제도의 역설'을 짚으며 "공정거래법상 자회사·손자회사 최소 지분율 규정으로 소유·지배 괴리가 상당히 허용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여전히 지주회사 체제 아래 중복 상장이 이어지고 있으며, 금산분리 예외로 일반지주회사의 CVC 100% 소유가 허용되고, CVC를 통한 최대 40% 외부자금 조달도 가능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노 변호사는 "새로운 제도가 없어서 AI 투자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상수로 두기에 자본 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라며 "지분 투자가 필요하다면 지주회사로부터 차례대로 조달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NHN(181710)와 두나무 사례, 구자은 LS(006260) 회장의 중복상장 발언 및 LS일렉트릭솔루션즈의 국내 증권예탁증권(KDR) 추진 사례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좌장을 맡은 조연성 덕성여대 교수는 "금산분리 완화 논의는 혁신자금 조달이라는 명분보다,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금융 불안과 지배구조 왜곡의 위험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며 "금산분리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안정성과 경제력 집중 억제를 떠받치는 핵심 원칙"이라고 정리했습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산분리 완화 추진, 혁신자금 마련인가? 재벌 특혜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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