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백(왼쪽부터) 국방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국가보훈부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통일부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곧이어 외교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시기상조"라고 반박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놓고 정부 안에서부터 말이 엇갈렸습니다.
지난 8월5일 외교부·통일부·국방부 합동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73년째 이어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4자 대화를 추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는 9월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주최하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여할 필요성도 제기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특사를 두고 국제 교섭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부처 간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상태"라며 "정 장관이 이상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니 디스카운트해(무게 낮추기) 달라"고 반박했습니다.
통일부가 남북 관계 주무 부처로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큰 그림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통일부가 특사를 두고 외국 정부와 직접 교섭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국가를 대표해 외국 정부와 교섭하는 일은 정부조직법상 외교부 업무입니다. 통일부가 별도의 외교 채널을 만들기 시작하면 상대국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외교부 태도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남·북·미·중 4자 대화가 시기상조라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해 외교부는 어떤 전략을 세워놓고 있습니까. 누가 워싱턴과 베이징을 찾아다니며 한국 정부 구상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먼저 북·미 대화의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지 않을까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했습니다. 올해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대화가 다시 시작되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국빈 만찬 중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북 직접 대화가 막혀 있으니 미국이 길을 열어주기를 기대하고, 한국은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는 전략이 벽에 부닥쳤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오래가면 남북 관계 단절은 깊어지고 안보 부담은 커집니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이 묻게 될 것입니다.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필자는 대통령 소속으로 가칭 '통일외교평화 특별보좌관'을 두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교섭을 맡기자고 제안합니다.
지금 북한은 남측과 대화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그렇다면 바깥에서부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워싱턴에서 미국과 한반도 평화공존의 큰 그림을 협의해야 합니다. 베이징에서는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타진해야 합니다. 일본과 유럽연합에도 한국 정부 구상을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러시아와도 통로를 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4자 회담이냐, 6자 회담이냐를 정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3자가 될 수도 있고 4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관련국의 이해관계를 하나씩 맞춰가면서 대화 조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들고 워싱턴과 베이징, 도쿄와 브뤼셀, 모스크바를 오가는 사람, 상대국의 생각을 듣고 접점을 찾으며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책임 있는 협상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김대중정부의 임동원 특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대북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미국에 설명하고 설득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역할을 임 특보가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남북 대화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과 긴밀히 협의하며 미국을 설득하고 한미일의 대북정책을 조율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페리 프로세스'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임동원 프로세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면의 역할을 인정한 표현이죠. 그런 외교적 축적 위에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도 가능했습니다.
지금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 가장 좋지요. 정상회담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전에 수많은 접촉과 설득, 협상이 쌓여야 합니다. 결국 프로세스가 있어야 하고, 그 프로세스를 책임지고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특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처럼 자신이 신뢰하는 인사들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협상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들은 왜 특사를 활용할까요.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알고, 부처의 칸막이에 얽매이지 않고 움직이며, 협상 결과를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막혀 있는 협상일수록 이런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반도 문제도 그럴 때가 됐습니다. 외교부 일이냐 통일부 일이냐를 놓고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외교부는 전문적인 외교 역량으로 뒷받침하고, 통일부는 남북 관계에 대한 전문성과 정책 구상을 제공하면 됩니다. 그 위에서 대통령의 신임과 권한을 가진 한 사람이 전체 교섭을 끌고 가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평화는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평화를 만들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려면 전략이 있어야 하고, 전략을 실행하려면 책임자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 프로세스와 함께, 그 프로세스를 책임지고 뛰어다닐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통일외교평화 특별보좌관’을 임명해 그 일을 맡길 때입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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