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리더십의 진화적 불일치와 성찰적 팔로어십
2026-08-12 06:00:00 2026-08-12 06:00:00
오늘날 국제정치는 바야흐로 각자도생과 강권 정치가 판치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다자주의 협력과 국제규범은 무력화됐고, 강대국들은 패권을 앞세워 약소국을 압박하는 새로운 제국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퇴행의 중심에는 트럼프로 대변되는 거칠고 확신에 찬 지배-공격형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신제국주의 리더 등장을 단순히 ‘정치적 현상’으로만 볼 것인가? 
 
마크 판 퓌흐트와 안자나 아후자의 저서 『빅맨(Selected)』은 인류가 수백만 년간 생존하며 뇌에 각인한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본능을 추적해 왜 우리가 특정 유형의 리더에게 끌리고 때로는 잘못된 리더를 선택하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현대의 복잡한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체제는 이성적이고 정교한 조정을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요구하지만, 대중은 위기 상황이 오면 원시부족사회에서 생존 확률을 높여 주었던 리더들(당당한 체구, 거침없는 언사, 공격적 태도)을 능력자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팔로어가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리더십 사이에서 진화적 미스매치(mismatch)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집단에 리더가 있고 다수가 그를 따르는 구조는 집단의 생존 본능 때문에 선택된 메커니즘이다. 현대 인류의 뇌는 여전히 수백만 년 전 수렵 채취 시절의 생존 본능에 최적화돼 있다. 진화 역사의 99% 이상을 부족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던 인류가 문명과 국가를 이룬 시기는 5000년 전이다. 문명사를 좁혀보면 대중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간은 250년도 채 되지 못한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인류 조상은 개인적으로 생존 경쟁에서 적응하기보다는 집단 안에서 협력하며 자연과 이웃 집단의 위협에 대처해 왔다고 분석했다. 부족 전쟁에서 패배한 집단은 소멸했고, 승리한 집단(부족)의 후예가 현재 인류인 것이다. 부족 전쟁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집단을 혐오하고 적대하는 반면에 자기 집단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내집단 편향성(부족 보존 본능)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팔로어의 부족 보존 본능과 지배-공격형 리더 선호 성향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의 일부다. 팔로어(부족민)는 지배-공격형 리더를 따를 때만 안전을 보장받았기에 이런 리더에게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매력을 느끼는 심리적 스위치를 발달시켰다. 
 
원시시대의 리더는 자기 부족만 챙기면 끝났지만, 현대의 리더는 내집단(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타국)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큰 소리와 주먹 대신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으로 협력을 이끌어낼 친사회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원시사회에서는 설탕과 지방이 귀했기 때문에 눈에 보일 때마다 비축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하지만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이 본능을 그대로 따르면 비만과 당뇨라는 부적응(미스매치)에 빠질 수 있다. 
 
문명을 퇴행을 막으려면 무의식적 부족 보존 본능을 극복할 수 있는 성찰척 팔로어십이 요구된다. (이미지=챗GPT)
 
현대사회에서 팔로어인 대중의 리더 선택도 이런 미스매치를 초래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인류를 ‘우리 vs. 그들’로 갈라치기하면서 팔로어의 부족 보존 본능에 편승해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가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트럼프처럼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거나 외부 집단(이민자, 타국)을 자기 집단의 자원을 빼앗아가는 약탈자로 규정한다. 평시에 현대인들은 이런 정치적 선동에 이성으로 비판할 수 있지만, 경제나 안보가 불안한 시대에는 이런 선동에 본능적으로 굴복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지정학적 무력 충돌, AI의 확산에 따른 경제 불평등과 고용불안, 기후변화 등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린 ‘초국가적 위기’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해야 할 세계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바라보는 대중의 마음은 피로감과 깊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원시적 부족 보존 본능을 자극해 표를 얻는 리더가 아니라 이런 미스매치 상황을 인지하고 이성적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친사회적 리더다. 나와 다른 문화, 인종, 국가를 ‘적’이 아닌 협력 파트너로 간주하면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 나아가 인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로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결국 우리가 투표장에서 리더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 부족 보존 본능을 극복하는 성찰적 팔로어십이 문명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열쇠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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