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한국과 대화를 영구 차단할 것을 시사한 건데요. 반면 미국을 향해선 '유화 손짓'을 하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가 개최되기 위해선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 노동당 제9차대회기념 열병식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연합뉴스)
한국과 사실상 대화 차단 …이 대통령 "지속 노력"
북한 대외 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지난 20일과 21일 진행된 김 위원장의 노동당 제9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 내용을 보도하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우리 정부와의 대화를 사실상 차단하겠다고 암시했습니다. 그는 "(한국은) 겉으로는 기만적인 화해와 평화를 제창하면서 조선반도비핵화의 간판 밑에 우리의 무장 해제를 획책하는 위해로운 존재를 같은 민족이라는 타성에 포로됐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한국에 대한 노선 전환도 선언했습니다. 그는 "대결과 완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한 관계사와 조선반도의 객관적 현실을 엄정히 분석했다"며 "가장 정당한 대적 투쟁 지침으로서 일시적인 전술적 조치가 아니라 우리의 국익과 국위를 수호하고 국가와 인민의 현재와 미래의 안전을 굳건히 담보하기 위한 역사적인 선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다뤄 나가려는 우리의 결심과 의지는 강고하며 결론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측이 남북 관계에서 얻어낼 실질적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북한에 각종 유화 정책을 펼쳐왔지만 북한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 개최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전쟁을 감수하는 대결 정책이 펼쳐져 생긴 대결 의식은 적대 감정을 순식간에 없앨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상응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간 쌓인 적대 감정과 대결의식을 일순간에 한 가지 획기적인 조처로 없앨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남북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겠다는 변곡점적 선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한국을 타국이자 적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유사시 핵 사용의 정치적 부담을 덜고 국가 대 국가 전쟁 논리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임 교수는 "이제는 (한국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붕괴됐다는 인식 아래 전략을 사전에 노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한국을 향한 예고 없는 고강도 시위를 시사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미국 태도에 달렸다"…조건부 대화론 '재확인'
북한은 남북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겠다고 선언한 반면 미국과는 만남의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이 밝힌 대미 정책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김 위원장은 "계속 미국과의 대결에 만반의 준비를 하며 최강경 자세를 변함없는 대미정책 기조로 확고히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조선·미국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며 "평화적 공존이든 영원한 대결이든 우리는 모든 것에 준비돼 있으며 그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측은 북·미 대화 개최 조건으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지속적으로 앞세우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는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 예정된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미 간 담판 개최 여부가 주목됩니다. 미·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가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면 대화할 수 있다는 조건부 대화론"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거나,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약속해야 (북·미 대화) 진전이 가능하다"고 부연했습니다. 양 교수는 "2차 분수령은 후계 구도의 내정 및 공식화 여부"라고 전망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김 위원장이 이번 메시지를 통해 초강경 기조는 유지하되, 미국의 태도에 따라 평화 공존도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겼다"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관계를 설정한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고 교수는 "한·미 군사연습 등 일정상 변수도 있고, 미·중 간 패권 경쟁과 관세 갈등 등으로 한반도 문제에 집중할 여건이 쉽지 않다"며 "단기간 내 본격적인 대화 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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