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AI 시대, 한국에는 '실행'을 만드는 VC가 필요하다
실행 역량이 기업가치 좌우…AI 시대 VC 역할 재정의 필요
자금 공급 넘어 '운영 설계자'로…FDE형 투자 모델 부상
AX는 구조 개편의 문제…'사람 감축' 아닌 '생산성 재배치'
2026-04-21 15:18:26 2026-04-21 17:40:12
최근 맥킨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세쿼이아 캐피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서 반복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공지능(AI)는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즉 운영 체계의 문제라는 점이다. 많은 기업들이 AI를 도입했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은 도입했지만 실행 구조는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한국의 투자금융은 이 변화를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부족하다. 지금까지의 벤처캐피털(VC)은 좋은 회사를 선별하고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기술이 아니라 실행 역량과 속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현장에 들어가 보면 문제는 명확하다. 기술력은 이미 상향 평준화되었다. 그러나 고객 대응 속도, 제품 개선 주기, 조직 실행력,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많은 스타트업이 이 지점에서 성장 정체를 겪는다. 이는 단순히 창업자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 이후 기업을 체계적으로 성장시키는 '빌드업' 역량을 갖춘 투자금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본이 아니라 실행을 설계하고, 실행을 촉진하고, 실행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투자다.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솔루션을 설계하며,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새로운 운영 방식을 조직에 정착시키는 역할은 팔란티어의 전방 배치 엔지니어(FDE) 모델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 기업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 기술 부족이 아니라 운영 디테일의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오류, 반복되는 회의, 비정형 업무 구조, 불명확한 책임과 권한은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소모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AI를 붙여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실행이 데이터로 축적되고, 공유되며, 반복 가능한 구조로 전환되면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이는 인력 감축이 아니라 동일 인력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변화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실행을 뒷받침하는 운영체계(OS)다.
 
이 변화는 특히 스타트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대기업은 이미 복잡한 조직 구조와 시스템, 이해관계에 묶여 있어 실행 속도를 바꾸는 것이 기술 도입보다 어렵다. 반면 스타트업은 다르다. 기술, 자본, 그리고 FDE와 같은 실행 중심의 '특공대' 인력이 결합되면 동일 인력당 처리량은 증가하고, 부서 간 병목 현상과 리드타임은 단축되며, 고객 대응 속도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무엇보다 모든 실행이 데이터로 축적되면서 조직 자체가 학습 시스템으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를 스타트업이 스스로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기 기업은 리소스가 제한적이고, 실행 체계를 설계할 경험도 부족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VC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VC는 더 이상 단순히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 투자 이후 기업의 실행 역량과 속도를 끌어올리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이 변화는 더욱 절실하다. 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동일 인력으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운영 디테일 부족과 커뮤니케이션 비효율이다. 반복되는 회의, 불명확한 책임 구조, 암묵지 중심의 업무 방식은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낭비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AI 도입은 비용만 증가시키고 성과는 제한적인 상태로 머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에서 AI 전환(AX)은 인력 감축의 언어가 아니라 생산성 재배치의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핵심은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낭비하고 있는 시간을 제거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과 반복 업무, 불명확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발생하는 마찰 비용을 제거하고, 동일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며, 더 빠르게 의사결정하고, 더 빠르게 고객에 대응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즉 반복 업무는 제거하고, 인력은 가장 가치 있는 문제에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AX가 만들어야 할 진짜 변화다. 그리고 이 변화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그 답이 바로 '실행을 만드는 VC'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일부 VC들은 단순 투자자를 넘어 운영 파트너, 플랫폼, 플레이북을 통해 포트폴리오 기업의 성장을 직접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 투자금융은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기업의 실행력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로 확장되어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실행 구조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그 실행 구조를 만들어내는 투자금융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좋은 회사를 고르는 VC를 넘어 좋은 회사를 만들어내는 VC가 필요하다.
 
지금은 투자 방식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돈을 투자하는 것을 넘어, 실행에 투자해야 한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K-정책금융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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