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 응고고(Ngogo) 지역에는 침팬지 메트로폴리스가 있다. 개체수 200마리가 넘는 세계 최대의 침팬지 집단이다. 침팬지들은 함께 사냥하고 나눠 먹고 다투고 나서도 털을 골라주며 평화를 유지했다.
2015년 무렵,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서쪽 무리와 중앙 무리가 서로를 피하더니, 마주치면 과거의 친구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서방파’와 ‘중앙파’의 구분이 점차 뚜렷해졌다. 2018년 응고고는 교류가 완전히 사라진 두 개의 사회로 영구 분열했다. 서방파는 경계 지역을 순찰하며 눈에 띄는 중앙파 침팬지를 쫓아내고 공격했다. 폭력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그 결과 집단 분열 이후 서방파가 물어 죽인 중앙파만 수컷 7마리, 새끼 22마리에 달했다. 그야말로 ‘내전’이었다.
누가 누구와 함께 사냥하고 밥을 같이 먹고 놀러 다니는지 등을 관찰하며 침팬지의 사회적 관계망을 그리던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침팬지 사회가 분열하기 직전, 서쪽과 중앙 무리를 오가며 두루 친하게 지내던 핵심 개체들이 전염병 등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두 무리 사이에서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하던 이들의 소멸이 파국적 분열을 촉발했거나 가속화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논문은 이달 9일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30년 이상의 방대한 관찰 데이터를 통해 ‘비인간 동물 사회에서 최초로 내전을 실증한 연구’라며 학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기존의 주류 학설에 따르면, 전쟁은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정치적 목적, 종교적 차이, 숭고한 명분을 가진 문명사회에서만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 즉 집단 간 폭력은 인간 특유의 문화적 장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응고고 침팬지는 전쟁의 기원이 그보다 훨씬 원초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민족, 종교, 언어, 이념 같은 거창한 문화적 경계가 없더라도, 사회적 연결망의 붕괴와 타자화만으로도 얼마든지 끔찍한 집단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연구에는 일군의 인류학자도 참여했다. 왜일까? 인간 유전자와 98% 이상을 공유하는 침팬지 사회는 때로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인간은 왜 전쟁하는가? ‘자유세계의 평화’와 ‘테러리즘 심판’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혹은 서방 세계로부터 이슬람 공동체를 지키려는 ‘성전’이기 때문에? 아니다. 어쩌면 고귀한 목표는 원초적 폭력이 저질러진 이후에 덧씌워진 정당화의 명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지난해 내놓은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백인 우월주의자와 이에 저항하는 극좌 테러리스트의 활동 속에서, 극단화한 정치로 미국이 내전을 벌이는 가상 상황을 그린다.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우리는 모두 이 영화가 결코 허무맹랑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라느니, “이민자 챔피언을 뽑아 UFC 챔피언과 싸우게 하자”는 등의 말을 대통령이 거리낌없이 내뱉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격렬한 심리적·정치적 내전을 겪고 있다.
2018년 응고고 침팬지 사회는 서부와 중부 집단으로 영구 분열했다. 2019년 서부 무리의 침팬지들이 가운데 있는 중부 무리의 개체를 공격하고 있다. (사진=Aron Sandel)
그럼에도 이 상황이 진짜 물리적 내전으로 번지지 않는 이유는,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쏜 이민세관단속국 요원의 행동에 함께 고개를 젓고 학교와 교회,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이웃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원초적 부족주의와 갈등을 완화하고 내전을 막는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2024년 12월 윤석열의 내란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와 진영 간 단절은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우리가 침팬지들에게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계급, 정치적 지향, 남성과 여성, 성적 소수자와 비소수자 등 양극화된 혐오의 단층선을 가로지르며 사회적 접착제를 바르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는 것 아닐까? 그들의 재량과 활동 반경을 더 넓혀주는 것 아닐까?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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