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과급 논쟁, 우리는 틀린 질문을 하고 있다
2026-05-21 06:00:00 2026-05-21 06:00:00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300조원으로 잡으면 약 45조원, 임직원 1인당 6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소액주주들은 “배당보다 성과급이 네 배”라며 반발하고, 전문가들은 상법 위반 소지를 거론한다. 그런데 이 논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묻고 있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45조원을 누가 얼마나 가져가느냐”는 물음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왜 하필 지금 이 갈등이 터진 것일까. 삼성전자와 노조의 관계가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니고, 성과급 산정 방식이 최근에 바뀐 것도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완전경쟁시장에서 기대되는 정상 이윤을 초과하는 부분을 ‘렌트(rent)’라 부른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기술 독점과 수요 폭발이 결합되어 렌트를 극적으로 팽창시켰다. MIT의 데이비드 오토르 등 경제학자들은 기술혁신이 소수의 초고수익 기업에 시장을 집중시키는 ‘슈퍼스타 기업’ 현상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렌트 규모가 커지면 그 배분을 둘러싼 압력이 커지는 것은 예측 가능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노조 요구는 정당한가. 혁신 기업에서 기술적 성과가 노동자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꽤 잘 확립된 사실이다. 미국 특허 데이터 연구를 보면, 특허 렌트가 생기면 잉여의 상당 부분이 임직원 임금 상승으로 귀착된다. 문제는 영업이익의 15%를 고정 비율로 제도화하는 방식에 있다. 전통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극단적으로 크다. 슈퍼사이클의 과실을 고정 비율로 나누자는 논리는 불황기의 손실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버티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현행 EVA(경제적 부가가치) 기반의 성과급 산정 방식이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논쟁이 ‘얼마를 줄 것인가’에서 ‘어떤 구조로 줄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최근 논쟁의 배후에는 ‘직원에게 더 주면 주주가 손해를 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스탠퍼드와 런던정경대 경제학자들이 여러 나라의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성과 연동 보상 체계를 갖춘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 보상 설계가 직원의 노력과 기업 성과를 함께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직원에 대한 보상이 주주 몫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이 자체를 키우는 기제가 될 수 있다. 노조가 강조하는 논리(“인재가 경쟁력”)와 주주가 원하는 결과(장기 기업가치 상승)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금의 싸움은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파이를 어떻게 더 크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설계가 가능한가. 가장 강력한 처방은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즉 현금이 아닌 자사주를 성과 보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금 성과급은 한 번 지급되면 소멸된다. 회사에는 즉각적인 현금 유출이고, 직원에게는 회사 미래와 무관한 일회성 수입이다. 반면 RSU는 일정 기간 재직이나 성과 조건을 충족해야 주식이 지급된다. 직원이 주주가 되는 구조다. 테슬라와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입사 때부터 RSU를 핵심 보상으로 제공하며, 고연차 핵심 인력의 경우 총보상에서 주식 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기도 한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호황기에 RSU를 핵심 보상 수단으로 활용한 결과, 직원 이직률이 2023년 5.3%에서 2025년 2.5%로 급감했다. 인재 전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에서 현금보다 지분이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 본사. (사진=뉴시스)
 
물론 RSU만이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프랑스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법정 산식에 따른 이익공유(participation)를 의무화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직원 적립 계좌에 배분하되, 일정 기간 인출을 제한해 단기 소비가 아닌 장기 자산 형성으로 유도하는 구조다. 노조가 요구하는 투명성·비율 연동을 수용하면서도, 이익이 줄면 재원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여서 주주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방식이 무엇이든 핵심은 하나다. 성과 배분이 일회성 현금 지급으로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직원과 기업이 함께 장기 성장에 베팅하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삼성전자의 갈등은 단순한 노사 힘겨루기가 아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이 20세기식 보상 구조로 21세기의 질문에 답하려다 생긴 구조적 지체의 표출이다. 45조원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싸움을 멈추고, 어떤 설계가 노동자·주주·기업 모두를 장기 성장에 함께 묶어두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논쟁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윤태준 한국ESG연구소 거버넌스본부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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