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고착화하면서 보험사들의 환헤지(외환 위험 회피)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산운용에서 외화증권 투자 비중이 큰 보험사일수록 환율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가 함께 증가하는데요. 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만기가 돌아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차환(롤오버) 리스크와 유동성 관리가 여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환헤지 비용 상승 우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날 1542.7원에 마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9일 이후 약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환율은 2024년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하반기 1300원대로 잠시 하락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동 전쟁과 한미 간 금리 격차 등이 맞물리면서 다시 꾸준히 상승해 150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환율 기조가 일시적 현상을 넘어 '뉴노멀'로 자리 잡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험사들은 자산운용의 일정 부분을 외화증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보험사의 외화증권투자 잔액은 749억6000만달러(한화 약 116조원)에 육박합니다. 2024년 1분기 640억2000만달러에서 100억달러 넘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보험사들은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통화선도환과 외환스왑 등 파생상품을 통해 환 위험을 관리합니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외화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100%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어 환율 변동이 즉각적으로 손실로 이어지는 상황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환헤지 과정에서 파생상품 거래 비용이 늘어나 환헤지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보험사들이 투자하는 해외 채권 등 투자 자산의 만기가 긴 반면, 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은 만기가 1년 안팎인 경우가 많습니다. 환율이 급등한 시점에서 단기 파생상품의 만기 물량이 몰릴 경우 환헤지 부담이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통상적으로 환율이 높아지는 국면에서 환헤지 비용이 동반상승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사마다 롤오버(재체결) 만기가 다르겠지만 특정 연도에 물량이 집중되면 부담이 커질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점검에 나섰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인한 보험권 잠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보험권 간담회를 개최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서영일 보험담당 부원장보는 환율 추가 상승 기대감에 기반한 무분별한 환투기성 외화 포지션 확대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환헤지 파생상품 만기를 분산해 차환 리스크를 줄이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본건전성 악화·배당 제한 우려
보험사들의 자본건전성 악화 우려도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환율 상승으로 외화자산 규모가 커지면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에 하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외환리스크액이 늘어나며 요구자본이 상승하기 때문인데요.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환율이 100원 오를 때 킥스 비율은 생명보험사가 1.7%p, 손해보험사가 0.6%p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생보사가 손보사에 비해 해외 투자 규모와 비중이 높아 환율은 생보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생명보험협회 월간생명보험통계 공시에 따르면 3월 기준 보험사가 보유한 유가증권 중 외화표시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교보생명 25.8%(21조5722억원),
한화생명(088350) 19%(16조7636억원), 신한라이프 12.5%(5조7797억원),
삼성생명(032830) 11.5%(28조8330억원)입니다.
해외 투자 비중이 높을수록 고환율 국면에서 환헤지 갱신 부담은 더욱 확대됩니다. 일례로 푸본현대생명은 해외 자산 비중이 높아 다른 보험사에 비해 리스크 노출도가 큽니다. 푸본현대생명의 외화표시유가증권 규모는 5조6649억원으로 전체 유가증권 13조5116억원의 41.9%에 달합니다.
이처럼 환헤지 비용 증가로 해외 투자 수익이 줄고 손실이 늘어나 주주 배당 여력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시됐습니다. 현재 보험사들은 투자손익이 당기순이익의 절반가량을 좌우할 만큼 의존도가 높습니다. 배당 재원인 이익잉여금 역시 해약환급금 준비금 부담으로 대부분의 상장 보험사에서 배당 여력이 제한된 상태입니다.
업계에서는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는 등 그나마 환율 움직임이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어 환헤지 비용이 실제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당사의 경우 100% 환헤지를 하고 있고 고환율이 연초부터 지속된 만큼 현재 환율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고환율이 지속되면 환헤지 비용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험사들이 환율 변동 폭을 예상해 미리 환헤지를 해두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보험사들의 외화 유가증권 잔액 자체는 늘었지만 비중이 유지 또는 축소 기조로 돌아선 영향으로 고환율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정 연구원은 "외화 유가증권 자산 규모 자체는 늘어났지만 전체 자산운용에서 외화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지 않았다"며 "16개 생명보험사를 기준으로 봤을 때 비중은 14% 초반대"라고 설명했습니다.
고환율 국면에서 보험사들의 환헤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은 위쪽부터 삼성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생명, 롯데손해보험 간판. (사진=각 사)
배희 기자 SheisH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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