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불량해도 연금은 산다?…스튜어드십 엇박자 신호
주총서 지배구조 흠결 지적하며 반대표 던지고도 장내 대량 매수
수익률 좇는 매매와 스튜어드십 코드 간극…시장 '오도' 우려
형식적 의결권 행사 지양하고 페널티 등 제도적 보완 시급
2026-07-02 14:52:12 2026-07-02 15:30:57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상장사들의 지배구조 문제에 반대표를 던지고도 해당 기업의 주식을 장내에서 대량 사들이는 등 의결권 행사와 투자전략 간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주도하며 적극적 주주 관여를 권장해야 할 연기금이 정작 형식적인 의결권 행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총선 반대, 장내선 매수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및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주식보유상황보고서를 제출한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유니드, 비에이치, 씨에스윈드, 심텍 등의 특정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해 지배구조 문제가 부각됐습니다. 그러나 주총 후 해당 기업들의 주식 비중은 장내 매수를 통해 오히려 대폭 늘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운용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수탁자 원칙상 펀더멘털과 시세에 따라 매매를 단행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 방향과 펀드 자금 집행 간의 간극이 커지면, 시장에 '지배구조가 불량해도 수급은 알아서 들어온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우려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연금은 지난 3월 유니드 정기주총에서 일반주주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정관변경(전자주주총회 배제)과 과도한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연금의 보유 지분율은 2월2일 보고일 기준 7.04%에서 주총 이후인 4월15일 8.08%로 1.04%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위탁운용사를 통해 의결권을 대리 행사한 비에이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리 기관들은 비에이치의 과도한 임원 보수 및 퇴직금 지급 규정 제정에 대해 100% 반대표를 던졌고, 일부 사외이사 선임과 정관변경 안건에 대해서도 30%가 넘는 반대율을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연금의 지분율은 3월25일 7.47%에서 6월16일 13.32%로 무려 5.85%포인트 급증했습니다.
 
이 밖에도 씨에스윈드는 부당한 사외이사 임기 조정과 보수 한도 등에 반대했음에도 지분율이 8.96%에서 9.92%로 늘었으며, 심텍 또한 사외이사 선임(86.84% 반대)과 자사주 처분 계획(44.42% 반대)에 제동을 걸었지만 지분율은 직전 4.72%에서 6.09%로 증가했습니다.
 
물론 의결권 행사 구도와 매매 동향이 일치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연금은 정관변경 및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한 하나투어의 지분을 7.86%에서 4.71%로 축소했고, 자사주 오남용 우려로 반대표를 던진 한솔케미칼(13.00%→11.89%)과 KCC(11.23%→10.14%), 한샘(5.10%→4.08%) 등의 지분도 일관성 있게 덜어냈습니다. 반대로 주총 안건에 반대 없이 100% 찬성표를 던졌던 DL이앤씨의 경우 지분율을 8.06%에서 11.20%로 대폭 확대하며 양호한 거버넌스에 자본을 투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 보강 필요”
 
최근 당정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하고 자본시장 선진화(밸류업)를 추진하는 기조 속에서, 연금의 엇박자 행보는 제도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재무적 지표만 따지는 투자 부서와 형식적 가이드라인에 의존하는 의결권 부서가 분리되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거수기나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으려면 펀드 운용 지침의 손질이 필요하다"며 "지배구조에 흠결이 발견된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제한하는 페널티 룰을 마련하고, 반대로 주주환원이 우수한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자금을 배정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유관 기관들도 이러한 '형식적 주주권 행사'의 한계를 인식하고 제도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2016년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행 점검 부재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한국ESG기준원과 관계 부처는 지난달 초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조문의 강경해진 어조입니다. 기존 원칙에 있던 '고객 이익을 위해 주식 매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을 '투자 철회'로 수정해 페널티의 성격을 강화했고, 적용 자산군도 상장 주식을 넘어 채권과 대체투자 등으로 폭넓게 확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영국과 같은 기관투자자들 사이의 강력한 상호 평가의 문화와 환경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칫 실체와 무관하게 서류와 제도만 갖추면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기존의 유사한 제도와 비슷하게 형식적으로 운영될 위험 또한 많고, 따라서 코드 개정을 넘어서는 실효성 확보를 위한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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