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수출 대신 ‘현지화’…산업계, 공급망 재편 ‘잰걸음’
관세 압박 돌파…현대차·포스코 ‘철강 동맹’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 생산 거점 확대
“현지화 전략, 국내 산업 고용 위축 가능성”
2026-09-07 15:21:04 2026-09-07 15:41:21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반도체,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한국 주요 제조업 생산 거점의 미국 이동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고율의 관세 등 미국의 통상정책 압박에 대응함과 동시에, 주력 수출 시장인 북미에서의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등 공급망 재편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HPLS 부지에 걸린 대형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7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지난 4(현지시각) 미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제철소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HPLS는 연산 270만톤 규모의 미국 최초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로, 오는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4분기 착공될 예정입니다. 총 투자비는 58억달러(8조원)에 달하며, 지분 구조는 현대제철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 각 15%로 구성됐습니다.
 
현대차(005380)포스코(005490)가 이 같은 제철소 동맹을 구축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관세정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50%에 달하는 철강 관세의 압박을 돌파하기 위해 현지 공급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담을 나누기 위한 목적입니다. 특히 한국 제조업의 주력 수출 시장인 북미에서의 생산 거점을 강화해 글로벌 업체들과의 추가 공급 계약 등의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노림수도 깔렸습니다.
 
현대차는 HLPS를 통해 철강부터 완성차, 더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까지 현지 조달 체계를 구축하는 등 현지 공급망을 강화하고, 탄소저감 철강재를 바탕으로 글로벌 업계로까지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HPLS 철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도 철강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일부 업체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포스코 역시 협력을 통한 현지 생산 기반 확대로 통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한편, 미국 완성차업계 등으로 공급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HLPS에서 생산된 철강재는 현대차·기아 미국 공장에 각 40만톤씩 공급이 확정돼 있고 포스코도 60만톤의 판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 270만톤의 철강재 판매가 실현되면 약 40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됩니다.
 
대미 수출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반도체업계도 미국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달 28일 미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기공식을 열고 HBM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본격화했습니다. 인디애나 팹은 SK하이닉스가 4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건설하는 첫 생산기지로 오는 202810월 클린룸(패키징이 이뤄지는 공간)을 완공해 2029년 하반기부터 HBM 양산을 목표로 합니다. 이곳에서는 연간 수십만 장 분량의 HBM이 생산될 계획입니다.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팹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005930)도 이미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올해 말 두번째 파운드리 공장(테일러 팹2) 착공을 준비하는 등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이 자국 생산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선이 우세합니다. 여기에 미국 내 생산능력을 확대해 엔비디아, 구글, 메타 등 현지 빅테크 업체의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 잡고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배터리업계도 중국산 공습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으로 인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중심으로 한 미국 생산 거점 확대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삼성SDI(006400)·SK(034730)온 등 K-배터리 3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 등으로 대규모 ESS 수요가 늘면서 북미 생산 거점을 확대하거나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 라인을 전환하는 등 북미 시장 거점 마련에 집중하는 양상입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미 투자 압박이 앞으로 더 세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국내 사업 여건과 원가 절감 차원 등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서두르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면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현지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글로벌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 도모 등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 존재하지만, 고용 유발 계수가 낮은 반도체 등 산업계의 미국 중심 현지화 전략은 국내에 고용 위축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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