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노봉법’과 상생하는 길
2026-09-15 12:00:30 2026-09-15 14:11:57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법 시행 전부터 산업 현장이 마비될 것이란 전망과 기업 경영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지난 반년 동안 당초 우려했던 만큼의 치명적인 혼선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최근 현대제철에선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1호 타결사례가 나오며 노사 합의의 물꼬를 터트리기도 했다. 원청과 하청 노조가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은 노란봉투법의 당초 취지대로 하청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대제철 역시 평화적 원·하청 교섭 합의로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 및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 이면에 자리한 현실을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법 시행 후 정부가 수차례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한 기준 등 혼란의 여지가 적지 않아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N% 성과급 요구처럼 주주 등의 권익을 제약하거나 공장 신설 등 사업 경영상 결정 자체의 경우 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최근 정부 판단에 대해, 재계와 노동계 모두 반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는 해당 지침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 인력 배치 등 세부 기준이 미흡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계는 법이 보장한 교섭권을 인위적으로 축소한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서 잠재적 갈등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노사 교섭의 사법화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노란봉투법 관련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사업장은 456곳이다. 하청 노조 1218곳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는데, 실제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마치고 노사 교섭 단계에 들어간 곳은 102(22.4%)에 불과했다. 법 시행 반년 동안 실제 교섭에 들어간 사업장이 4곳 중 1곳도 되지 않은 것이다.
 
나머지 경우는 하청 교섭과 관련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구하거나,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에 대한 대화의 장을 열어주자는 법 취지가 무색하게 법적 리스크가 가중되는 셈이다이 같은 원청 사용자의 수동적 태도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법 자체보다 이를 최대한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현장의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사는 물론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처음부터 부실한 기준에 대한 현장 혼란 우려가 컸던 만큼,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판례가 축적되면서 구체적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고수할 때는 이미 지났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 3월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조적 약자인 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노사 상생을 도모하겠다는 노란봉투법의 궁극적 목적과 취지에 맞게 현장의 혼선을 줄일 보완 입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계와 노동계 역시 자신들의 입장만을 위한 논리를 거두고 상생의 자세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가 없으면 기업은 돌아가지 않고, 기업이 망하면 노동자도 사라진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노사 모두가 법의 진정한 취지를 돌아보고 상생의 모범 답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길 기대한다.
 
배덕훈 재계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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