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연초부터 물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신선식품류, 유가, 전세값, 공공요금 상승 등 서민생활에 밀접한 물가 들이 크게 뛰고 있다.
다음 주 중 정부가 관련 대책을 내놓기로 했지만,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실기(失期)와 정부의 정책실패 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제 원자재값 상승과 중국발 인플레이션에다 국내의 유동성 증가, 식품·공공요금 인상 등 국내외적 요인으로 올해 국내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칠 것이란 전망이다.
◇ 삼중고(三重苦)에 '미친 물가'
작년 소비자물가는 전년에 비해 2.9% 오르면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태풍과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신선식품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리수를 넘어섰다. 유가도 급격히 오르면서 서울 시내에서 보통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을 넘는 주유소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물가 동향을 보면 신선식품 지수는 전년대비 21.3%나 올라 지난 1994년 23.8%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장 파동까지 몰고 온 배추(80.8%), 무(98.1%)의 상승폭이 특히 컸다.
연초까지 이런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설탕은 9%대, 두부는 20%대 오르더니 식음료까지 덩달아 가격이 뛰고 있다. 작년에 이어 신선식품 가격은 올해 초 남부지방 폭설로 수확이 어려워지면서 연초부터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식품 물가 부담은 한 달 앞 둔 설 명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과, 배, 굴비 등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설 선물세트 가격이 지난해보다 20%가량 비싸지고 구제역 확산으로 한우 가격도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유통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석유류 물가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고 100달러까지 예상되면서 지난 12월 석유류는 전년동월비 8.3% 올랐다.
전세값 역시 8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4일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전셋값 상승률은 전국 평균 7.1%로,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뛰기 시작했던 2002년(10.1%)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 정부 성장위주 정책·내년 선거·원자재값 상승..물가안정에 '악재'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5%성장, 3%대 물가상승률"을 약속했다. 주요 기관은 최소 2.8% 최대 3.5% 등 평균 3.12%대 물가 예상 전망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과 주요기관 전망치처럼 올해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기관 2011년 경제전망> (단위 : %)
|
한국
은행
|
한국개발
연구원
|
삼성경제
연구소
|
LG경제
연구원
|
한국경제
연구원
|
경제성장률 |
4.5 |
4.2 |
3.8 |
4.1 |
4.1 |
물가상승률 |
3.5 |
3.2 |
2.8 |
3.1 |
3 |
경상수지(억달러) |
180 |
152 |
152 |
147 |
132 |
먼저 내년 선거를 앞둔 정부의 성장 위주 정책이 지적된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가시적 성과에 부담을 느끼는 정부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성장 위주의 정책을 버리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전국적인 선거가 있기 전 해나 그 해,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다"며 "경제지표의 개선을 통해 여권에게 우호적인 선거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현대국가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높은 경제성장률에 집착할 경우, 시중 통화량은 늘어나고 이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밖에 없다.
대외 환경도 좋지 않다. 연초 물가 상승을 주도한 설탕, 곡류, 유가 등은 모두 해외의존도가 높은 소비재들로 국제원자재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김영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상 유동성 확대가 계속되면서 유가 뿐만 아니라 식품 등 국제원자재값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와 한은의 희망처럼 올 한해 물가가 3%에 머무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 "한은, 선제 대응 놓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해 취임당시 물가안정보다 '성장과 경기회복'에 더 비중을 둔 통화정책을 강조한 바 있다.
곽해선 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준금리를 바로 올린다고 해서 물가 급등이 완화되지 않는다"며 "시간 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답했다. 선제적으로 물가 급등에 대처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물가가 3%내로 물가 관리치에는 부합했지만 농수산물가격과 원자재가격으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상승률은 더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1분기내 물가를 잡지 못하면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관리 목표치는 실패할 것이고 국민경제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같은 부담을 인식해서인지 한은은 6일 올해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정책 주안점을 물가안정에 두기로 했다. 작년 경기회복세에 도움이 되겠다는 기준금리 운용방향과는 반대다.
전문가들은 1분기를 시작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재 연 2.5%에서 최소한 2~4차례 정도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물가에 신음하는 서민층 많아질 듯
SK증권은 지난해 말 낸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 교육비 인상 ▲ 유가 상승 ▲ 부동산 가격 상승 ▲ 외식비 상승 등의 압력으로 인해 연간 4%대의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급등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다음 주 13일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열어 물가안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용재 지식경제부 물가정책과장은 "이번 회의에서 공공요금, 대학등록금 등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물가의 경우 공급을 늘리기 보단 일단 수요 조절을 통해 조정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곡물과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생필품 가격 인상을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정부는 생필품 가격 인상 분산을 유도하고 비축량을 늘리며 관세율 인하 등 다각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3일 정부의 물가대책 발표와 금융통화위원회가 겹치면서 한은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한은 스스로 올 상반기 물가상승률을 3.7%로 내다본 만큼 대응에 나서야 하지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통화정책 방향으로 설정한 지난 1999년 이후, 1월에 기준금리를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두 차례의 전국 선거를 앞두고 성장세에 집중하는 정부, 선제적 대응에 둔감한 한국은행, 대외변수에 취약한 한국경제의 상황 등이 올해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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